양팔이 없이 태어난 그는 바람만을 그리는 화가(畵家)였다
입에 붓을 물고 아무도 모르는 바람들을
그는 종이에 그려 넣었다
사람들은 그가 그린 그림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그의 붓은 아이의 부드러운 숨소리를 내며
아주 먼 곳까지 흘러갔다 오곤 했다
그림이 되지 않으면
절벽으로 기어올라가 그는 몇 달씩 입을 벌렸다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색(色) 하나를 찾기 위해
눈 속 깊은 곳으로 어두운 화산을 내려 보내곤 하였다
그는, 자궁 안에 두고 온
자신의 두 손을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 김경주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랜덤하우스
어머니 대지가 그리운 시대라고 시인은 말하고 싶은 가보다.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색은 과연 어떤 색깔일까. 눈 속 그 깊은 곳으로 내려 보낸 화산은 얼마나 뜨겁기에 어두운 것일까. 드라이아이스는 화상을 입힌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외계(外界)인 여기를, 이 낯설고 어두운 세상을, 모성으로 가득 채울 수는 없을까 시인은 간절히 바라고 있다. /조길성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