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소송’으로 이목을 집중시킨 삼성과 애플간 특허 소송이 결국 애플측에 일방적으로 손을 들어준 ‘완승’으로 이어졌다. 국내 법원의 사실상 승리 판결에도 불구, 정작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지방법원의 배심원단은 애플에 한판승을 안겨줬다. 자국에서 이뤄진 결과로 이미 예견된 것이긴 하지만 이같은 결과가 그대로 확정될 경우 삼성측은 심각한 타격을 입을 게 불을 보듯 뻔하게 됐다. 당장 삼성은 이 판결로 애플측에 약 10억5천만 달러,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무려 1조2천억원을 배상해야 할 처지다. 불과 20시간 전 국내 법원이 애플측의 디자인 특허침해를 인정하지 않은 것과 달리 미국 법원은 애플측의 주장을 대부분 인정했다. 국내 법원이 삼성에 특허 침해의 댓가로 4천여만원을 인정한데 반해 미국 법원은 1조2천억원을 물어주라는 배심원 평결을 내렸다. 삼성은 불과 하룻만에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이같은 상반된 결과는 결국 자국 기업의 유불리를 따진 평결에 영향을 미쳤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번 소송의 배심원들이 실리콘밸리가 있는 북부 캘리포니아에 거주하면서 애플을 비롯한 미국의 IT기업들에 대해 우호적인 이미지를 가지게 됐을 개연성이 크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이는 배심원 제도의 고질적 문제점이다. 특히 또 소송내용이 복잡하고 손해배상 액수가 엄청난데도 이번 소송 배심원들이 평의에 긴 시간을 들이지 않고 만 하루도 되기 전에 결론을 내놓은 것도 이례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때문에 앞으로 자국산업 보호를 위한 보호무역주의로 이어질 공산마저 높아 우려스럽다. 특히 이번 평결은 최근 영국이나 독일, 네덜란드, 한국의 판결 결과와는 상반되는 것이어서 더욱 그렇다.
어쨌든 삼성은 즉각 반발했다. 미국 소송 배심원단의 평결에 이의(평결불복법률심리·JMOL)를 제기하고, 만약 패소할 경우에는 항소하겠다는 입장이다. 덧붙여 배심원 평결에 대해 “‘애플의 승리’가 아니라 ‘소비자의 손실’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직 재판은 완전 끝나지 않았다. 미국 법원에서 배심원들이 애플의 손을 들어줬지만, 판결은 루시 고 판사가 배심원들의 평결은 살펴보고 내리게 된다. 삼성은 아직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평결을 뒤집으려는 삼성은 평결에 문제가 있다는 합리적인 근거를 최대한 많이 제시해야 한다. 다음 달 20일로 예정된 애플의 삼성전자 제품 판매금지 심리도 판사의 의중을 살필 기회가 된다. 또한 오는 31일 일본 도쿄지방재판소에서 애플이 삼성전자 일본법인을 상대로 낸 소송의 중간판결이 나온다. 신발끈을 고쳐 매는 지혜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