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18 (금)

  • 흐림동두천 23.0℃
  • 흐림강릉 20.8℃
  • 서울 27.9℃
  • 구름많음대전 28.0℃
  • 흐림대구 27.6℃
  • 구름많음울산 25.5℃
  • 구름조금광주 28.6℃
  • 구름조금부산 28.2℃
  • 구름조금고창 28.4℃
  • 구름많음제주 29.8℃
  • 흐림강화 26.6℃
  • 구름많음보은 23.2℃
  • 구름많음금산 27.2℃
  • 구름많음강진군 29.6℃
  • 구름많음경주시 26.8℃
  • 맑음거제 28.6℃
기상청 제공

[생활에세이]한인숙"긍정의 힘"

 

나무가 거세게 흔들린다. 바람의 풍향계가 된 듯 나무는 바람의 이동방향으로 빠르게 움직인다. 바람의 움직임에 합류하지 못한 가지는 부러지고 찢겨 거리를 덮친다. 놀란 가로등이 넘어지고 간판이 뛰어내리고 길 건너 금, 은, 보석이 박힌 현수막이 요동친다. 뒤집힐 듯 거세게 뒤로 밀리는 요구르트 배달 손수레를 끌고 가던 여인이 멈춰선 거리는 한산한 듯 부산하다. 태풍이 지나는 거리의 풍경이다.

비에 흠뻑 젖은 여인은 조금은 상기된 듯 커다란 목소리로 인사를 한다. “비가 많이 오고 바람이 심하게 부니까 상점들이 대부분 문을 닫았어요. 거리에는 사람도 거의 없어요. 이런 날 배달을 한다는 것이 처음엔 엄두가 나지 않았는데 막상 거리로 나서보니 일을 할 만해요. 태풍과 맞서는 것이 그리 나쁘지 않아요. 비바람을 뚫고 다니는 것이 오히려 스트레스도 풀리고 좋아요. 뭔가 세상과의 한판 싸움에서 이기고 있는 것 같아요”하며 환하게 웃는 여인에게서 힘이 느껴진다. 평소에도 그 여인은 긍정적인 사고로 생활하는 듯하다. 피아노 위에 올려놓은 마른 장미를 보면서 인사를 건네곤 한다. “장미야 너는 말라도 참 예쁘구나. 어쩜 이렇게 고울 수가 있을까” 하기도 하고 가끔 청소하다 꽃을 삐뚤게 놓아두면 “어머 오늘은 꽃이 화가 났나 봐요. 벽을 보고 있어요. 왜 꽃이 화가 났을까” 하기도 하고 문이 닫혀 몇 번씩 방문을 하는 날도 그녀는 지그시 웃으며 “많이 바쁘신가 봐요. 또 문이 안 열릴까봐 가슴이 꽁닥꽁닥 했어요” 하면서 미안해 하는 나에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요구르트를 넘겨주고는 씩씩하게 돌아선다.

폭염에 지친 여름, 거리에서 온종일 일을 한다는 것이 많이 힘들고 무척이나 짜증스러웠을 것이다. 더구나 몇 번씩 같은 집을 방문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텐데 그녀는 인상을 쓰거나 배달을 거르는 일 없이 늘 밝은 표정으로 일을 한다. 그녀를 보면 진정한 프로정신이란 저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절로 하게 한다.

바람이 휘몰아칠 때마다 대추나무 생각에 애간장이 탔다. 5년 전 심은 30여 그루의 대추나무에 자두만한 대추가 실하게 열렸다. 작년에는 꽃이 아예 피지 않아 수확을 못한 것이 아쉬워 올해는 지극정성을 다했다. 봄에 거름을 넉넉히 내고 가지치기를 하고 적기에 병충해 예방을 하며 신경을 많이 쓴 덕분인지 올해는 대추가 실하게 열렸는데 이번 태풍에 대추나무 밑이 퍼렇게 대추가 쏟아졌다. 얼마나 속이 상하던지. 나하고는 대추가 인연이 없나보다며 투덜대고 있던 참이다. 이런 저런 생각에 붙들려 있던 나에게 그녀가 건네는 몇 마디 말은 나의 정신을 번쩍 들게 했다. 똑같은 상황에서도 어떤 생각으로 현실을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마음가짐이 확연히 달라짐을 그녀는 일깨워 줬다.

화물차가 뒤집어지고 교회 첨탑이 무너지고 사람이 옥상에서 떨어져 사망하는 모진 날씨지만 그 속을 뚫고 일을 하는 자신에게 칭찬을 해주고 지친 사람들을 위로해 주는 힘이야 말로 진정 아름다운 긍정의 힘이다. 긍정적인 사고로 사물을 바라보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세상과 맞설 용기가 있다면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너스레처럼 들리는 그녀의 몇 마디 말이 누군가에게는 큰 힘이 될 수 있음을, 그녀에게 파이팅을 보낸다.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