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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정진윤"뒷모습"

 

얼마 전에 꽤 오래동안 못 만났던 사람이 다녀갔다. 불쑥 들어서는 모습에서 반가움이 먼저 보이고, 그 다음에 조금 야윈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정년퇴임을 하고 인생 이모작을 위해 여러 가지 자격증도 따고 나름대로 준비를 하고 분주하게 움직이기는 했으나 마땅하게 갈 곳을 찾지 못했다며 쓸쓸하게 웃었다. 주변의 권유로 학원을 다니며 배운 무슨 관리사, 치료사 같은 자격증이 생각보다 소용이 없다며 허탈해 한다. 식사 후 커피를 마시고 헤어지는데, 뒷모습이 예전 같지 않아 바라보는 나까지 허전한 마음이 들었다.

한때는 비교적 안정되고 깔끔하게 보이는 봉급생활자들이 부럽다는 생각이 들 때도 많이 있었다. 휴일도 있고 상여금에 퇴직금도 있고 한 사람만 출근하면 금방 한 달이 돌아와 월급 타고 얼마나 좋을까 했는데 늦은 나이에 새로운 도전에 직면한 사람들의 하소연을 들어보면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구나 하며 위안을 삼기도 한다. 그러다가도 시간에 쫓기고 재료준비에 신경 쓰여 재고관리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은 부동산 공인중개사가 부럽고 야채 값 치솟으니 농사짓는 사람도 한 없이 부럽고 그렇게 남들은 잘 벌고 산다는 부질없는 생각도 했었는데...

하루 종일 날씨는 화창했고, 저녁나절 동쪽 하늘엔 노을이 곱게 번지고 있었다. 태풍에 대비하라는 방송은 전혀 실감이 나지 않았고 몇 차례나 어둠에 묻히는 노을에 눈길을 주며 나도 이다음에 저렇게 머물다 떠날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만 가득했다. 그러나 그 밤이 다 가기도 전에 바람은 기괴한 소리를 내며 종래에 없던 횡포를 부리기 시작했고 바람소리에, 빗소리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뜬눈으로 아침을 맞이했다. 게다가 기상특보는 혼란스러웠다. 오후에 제주 남부해상이라는 보도가 밤까지 이어졌고 같은 화면을 몇 차례씩 그대로 보여주다 금방 군산 앞바다라고 하다 다시 강화라는 보도를 하는 어처구니도 없는 짓을 하며 오히려 불안으로 몰아넣었다. 천만다행으로 피해가 예상보다 크지 않았다고는 해도 찢겨져 나간 비닐하우스, 공들여 키운 과일은 과수원 바닥에 떨어져 뒹굴고, 축사도 바람에 사라져 가축들은 떼를 지어 몰려다녔다. 볼라벤의 뒷모습은 처참함으로 다가왔다.

이번에 처음으로 알게 된 태풍 대비 요령 중에는 건물 안팎의 단속은 물론 가정에서는 정전에 대비해 손전등, 양초, 생수 등의 준비가 필요하겠지만 라면이나 부탄이 많이 팔렸다는 말을 들으면 좀 과하지 않았나 싶다. ‘떠나야 할 때를 알고 떠나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라고 했건만 올 여름의 뒷모습은 모질기까지 하다. 그나저나 유리창 안팎으로 테이프를 붙이고 신문까지 붙고 분무기로 물을 뿌리는 내 모습은 남의 눈엔 어떻게 보였을까.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 작가 신인상 수상 ▲가평 문학상 수상 ▲가평문인협회 이사 ▲플로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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