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세(去勢)는 소, 개, 말, 고양이 등 일부 동물의 사육상 필요에 의해 실시되는 것이 보통이다. 사육상의 필요나 생식선에 이상이 생긴 동물의 질환을 치료하기 위해 주로 시술된다. 말의 경우 고환을 제거하는 방법으로 난폭한 성질을 다스려 수송용이나 경주용으로 사용한다. 또 돼지, 양, 닭 등은 고환을 제거하면 맛이 좋다는 소비자의 선호에 따라 거세되기도 한다. 아파트 등 공동주택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애완동물의 고환이나 난소를 제거해 시끄러운 소리를 사전에 방지하기도 한다.
사람을 대상으로 한 고환제거는 고래(古來)부터 전해지나 남성에게 가해지는 최고의 형벌에 속했다. 알려진대로 한(漢)나라 사람 사마천은 죽음과 고환을 제거하는 궁형이 선택적으로 주어지자 스스로 고자가 돼 동양 최대 명저(名著) 중 하나인 사기를 남겼다. 반면 17세기 ‘신을 감동시키는 목소리’로 유명한 ‘카스트라토’들은 변성기를 막아 소년기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 고환을 제거하기도 했다. 중국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는 궁중에서 ‘왕의 여자’들을 접촉하는 내시들은 기본적으로 고자였음이 불문가지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고환을 제거하는 거세는 강력한 형벌로 시행됐다. 남성의 상징이자 번식의 상징인 고환의 제거는 신체 일부를 훼손하는 이상의 심리적 충격으로 야만적 형벌임에 분명했다. 따라서 근대들어 이성적 국가관이 확립된 이후 전 세계적으로 추방됐다. 그런데 21세기, 그것도 대한민국에서, 입법권을 가진 국회의원이 남성을 거세하자고 나섰다. 물론 최근 빈발하고 있는 성폭력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란다. 새누리당 박인숙 의원을 비롯한 19명은 성범죄자의 고환을 외과적으로 제거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성폭력범죄자의 외과적 치료에 관한 법’을 발의했다. 의사출신인 박 의원은 “성범죄에 경종을 울리려면 거세와 같은 특단의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야말로 포퓰리즘이다. 피해자의 아픔에 동조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자 가장 이성적으로 문제해결에 나서야 할 국회의원이 국민의 감정을 자극하는 것에 지나지 않다. 국회입법을 통해 치명적인 성범죄자를 사회에서 영원히 격리시키고, 화학적 치료가 효과가 없다면 아예 화학적 거세를 하자고 한다면 누구나 쌍수를 들어 환영할 것이다. 미국에서는 99년이나 종신형을 선고하는 성범죄장에 대해 심신미약 등의 이유로 5년형을 내릴수 있도록 틈을 준 것은 사법기관에 앞서 법률을 제정한 입법기관, 바로 국회의원들이다. 충격적인 법안을 통해 인기몰이를 하려는 국회의원의 함량미달에 또 다시 좌절케 된다.
/김진호 편집이사·인천편집경영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