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말 저런데 살아봤으면 소원이 없겠네, 나는 글쎄 지하에 산다구.”
출근버스를 기다리며 서있는 내게
머리카락을 연탄재같이 날리며 다가온 할머니
나는 차마 얼굴을 쳐다볼 수가 없어
할머니가 가리키는 손짓을 따라 아파트들을 바라보다가
투르게네프의 「거지」를 중얼거렸다
‘용서하시오, 형제.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구려.’
동냥을 주려고 호주머니며 지갑을 뒤졌지만
손수건마저 없었던 투르게네프의 심정이 어땠을까?
“용서하세요. 할머니. 가진 것이 없네요.”
나는 말하지 못했다
가방 속에는 시집이 들어있었던 것이다.
- 맹문재 ‘완전에 가까운 결단’ 중에서/2009년/도사출판 갈무리
시가 한 그릇 밥이었음 좋겠다는 어떤 시인의 말이 생각난다. 한 그릇 밥도 못되는 시를 쓰느라 몸을 상해가며 고심하는 사람들이 시인이다. 생존의 조건을 虛와 實로 양분화 한다면 다른 이들이 실을 쫓아 새벽같이 일어나 차를 몰 때 허를 찾아 구두끈을 매는 사람들.늘 골똘하지만 아무것도 손에 쥐지 않는 사람들, 뭔가를 자신에게 청하는 사람들에게 조차 가진 것이 없어 죄송하다고 머리를 숙이는 사람들, 그러나 시인은 말하지 못한다. 가방 속에는 시집이 들어있었기에. 시인의 가방 속에 덩그러니 들어있을 시집 한 권이 궁금하다. /최기순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