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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춘추]김미경"건강한 ‘영성’을 만들어 보길"

 

얼마 전 택시를 타고 우연한 기회에 종교와 관련한 이야기를 하게 됐다. 기사 분은 아마도 기독교를 믿는 독실한 신자였었나 보다. 그는 60, 70년대의 우리사회에서 기독교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대해 말하면서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갈 곳도 마땅히 없었고 먹을 것도 없었던 시절, 교회는 놀이의 마당이 돼 주고, 먹을 것을 나눠주는 곳이었으며 도심의 놀이터 역할을 했었다고 기억했다. 그 과정에서 심신의 안정과 영혼의 안식을 나름 찾을 수 있었다고 했다.

생각해 보니 필자도 도심의 오밀조밀한 산동네에서 놀이터도 없었던 시절에 골목을 돌아 숨박꼭질에 구슬치기에 날이 지는 줄 모르고 컸던 때를 생각해 보면 절기마다 있는 종교의 행사들은 지역에서 문화를 충족시켜 주는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생각해 보면 이러한 과정이 실제 종교생활을 하지 않았더라도 알게 모르게 내 생활의 일부로 들어와 있었다.

오십이 넘어가는 나이라고 밝힌 기사 분은 계속 말을 이어가며, 종교가 가진 편향적 시각과 자신이 겪은 영성에 대한 고민들은 종교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진다는 요지의 말을 했다.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구체적인 신앙을 갖고 있지는 않았지만 다양한 종교의 긍정적인 면을 받아들이고 있는 입장에서 궁금해졌다. 무엇이 영성에 대한 고민을 갖게 됐는지를 물어봤다.

어릴 적 종교체험은 영적인 각성의 과정이기 보다는 부모와 함께 했던 문화적 접근을 통한 받아들임이었고, 철이 들기 시작하면서 진심으로 신(神)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리고 신(神)이 내게 임하는 영성의 다양한 체험들은 놀라운 종교의 세계를 경험하고 신뢰하는 기회였으며, 내가 보는 것만을 받아들였던 물적인 가치관에서,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세계를 받아들이는 영적인 세계관을 삶의 지표로 삶는 계기였다고 했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 영성(靈性)의 체험과 관련한 목회자와의 의견 차이는 ‘마음의 갈등’으로 자리잡게 되고, 종교생활의 여러 부분에서 보여 지는 왜곡된 절차와 내용은 급기야 종교에 대해 냉담해지는 과정을 갖게 됐다고 했다. 그리고 종교란 내게 무엇인가? 종교를 통해 나는 어떤 것을 얻었나? 내 삶의 변화는 어떤 것이었는가? 등을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결국 마무리되는 이야기는 신자들의 욕구와 지적인 수준을 못 따라 온다는 것이었다. 모든 분들이 그런 것은 아니나 일면 일리 있는 말이기도 했다.

어느 소설책이었던가? ‘깨달음의 권력’이라는 책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결국 ‘깨달음의 영성’을 권력과 명예, 돈을 갖고자 하는 의미로 퇴색시키는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결국 깨달음을 얻었더라도 그것을 이용해 혹세무민하거나 또 다른 권력행사를 해서는 안 된다는 말로 이해했다. 누구든 처음에는 신심이 깊은 이들이었겠으나 영적인 각성에서 오는 신비한 현상들을 내면화 하지 못한 또 하나의 오류(종교적인 언어로는 마귀의 역사)라고 생각했다.

칼 구스타프 융은 어릴 적 사촌들과 원탁에서 했던 장난에서 종교적인 체험을 하며 신비한 영적세계를 경험하게 되고, 이러한 기회는 동양의 영적인 내용을 담은 책들을 번역하거나 감수하며 서양세계에 동양의 사상과 철학, 종교를 알리는 역할을 담당했다. 물론 정신의학을 통해 동양의 음양론과 유사한 여성성과 남성성의 원리인 심리유형론을 만들기도 했다. 융은 특히 ‘집단무의식’과 ‘원형’이라는 화두를 통해 인간이 보고 느끼는 것 이외의 심오한 영적인 측면 까지도 설명하려 했다.

이는 이제 영적인 세계가 종교에 국한된 측면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인간은 누구나 ‘영성’이 있고 이것을 어떻게 강화하느냐에 따라 건강한 영성으로 발현될 수도 있고, 건강하지 못한 형태로 드러날 수 있다. 결국 종교적인 영성이라 하더라도 사람이 살아가는 순리를 벗어난다면 문제로 들어날 수밖에 없다는 생각했다.

청명한 가을날 자기를 위한 치유의 시간을 갖을 수 있으면 좋겠다. 자기의 영성을 일깨우는 과정이고, 내면의 치유는 근본적인 자기에게 다가가는 나만의 종교행위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영성과 마음의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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