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역회피’는 돈없고 빽 없으면 그림의 떡이다. 그러나 권력이 있고 돈이 있으면 국적을 세탁하면서까지 병역을 피해간다. 지난 7월 국회 국방위원회 정희수 국회의원(새누리당)은 보도자료를 냈다. “올 상반기 기준 최근 5년간 대한민국 국적을 버리거나 상실한 18∼35세 남성 1만5천560명 중 국내에서 태어났지만 외국국적을 취득해 국적을 상실한 이는 1만4천695명으로 전체의 94.4%에 달한다”고 밝혔다.
정 의원은 “이들은 대한민국 비자만 발급받으면 국내에서 활동할 수 있고, 병역법상 37세만 지나면 입영 의무가 없어지기 때문에 대한민국 국적을 버린 뒤 37세 이후에 다시 대한민국 국적을 회복한다면 합법적으로 병역을 감면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병역 회피를 목적으로 국적을 포기하는 것으로 의심되는 남성이 연평균 3천여명이지만, 이들에 대한 병무청의 관리가 소홀해 병역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정 의원의 지적이 사실인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현직 고위 공직자 자녀 33명이 대한민국 국적을 포기하고 병역을 면제받은 것으로 드러났다고 한다. 33명 중에는 정부기관의 장과 국립대 학장, 지자체장, 청와대 비서관의 자녀도 포함돼 있다. 개중에는 하나도 아닌 두 아들의 국적을 모두 포기시키거나 영주권을 취득토록 해 병역면제를 받은 고위 공직자도 4명에 달했다. 또 공직자 본인이 일시적으로 해외 영주권을 받아 병역면제를 받은 이후에 국적을 회복해 공직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도 2명인 것으로 확인됐다.
우리사회 지도층 인사나 그 자녀들이 병역회피 등으로 지탄을 받은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정 의원이 경고한 바와 같이 최근 5년간 대한민국 국적을 버리거나 상실한 18~35세 남자 한해 평균 3천112명의 94%가 국내에서 태어난 후 나중에 외국 국적을 취득해 국적을 상실한 남자들로, 병역 회피가 의심되는 사람들이다. 이번에 드러난 고위공직자 자녀들의 병역면제 실태는 현행법의 틈새를 노린 병역회피가 공직사회는 물론 사회 기득권층에 만연돼 있음을 보여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병역면제를 노린 국적포기는 기득권층의 비뚤어진 국민의식이 여전하다는 점을 말해 주는 것이다. 자녀들을 군에 보낸 국민들은 이들 고위공직자들의 현명한 판단을 지켜볼 것이다.
병무청은 국적 이탈자나 상실자에 대해 법무부에 협조를 구해 국내입국금지 요청을 하고 입국 후에는 관계기관과 공조해 병역 회피를 목적으로 국적을 상실한 경우로 판단되면 추방하고 국내에 입국하지 못하도록 하는 등의 강력한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