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6·25)의 상흔이 가득했던 1955년 북한 공군의 주력기인 야크-18기 2대가 서울상공에 나타났다.
전쟁의 참혹함에서 헤어나려던 국민들이 깜짝 놀랐지만 북한군 이운용 대위와 이인선 소위는 자신들의 비행기를 당시 여의도 비행장에 착륙시키고 귀순했다. 이들에 대한 남한당국과 국민들의 환영은 대단했다. 각종 환영대회가 열리고 이들은 국민적 영웅으로 대접받았다.
이에 앞서 1950년 북한 공군소속 이건순 중위가 IL10기를 타고 김해비행장으로 귀순했고, 1953년 노금석 상위가 미그 15기에 백기를 단채 남한으로 넘어왔다. 그러나 비행기를 이용한 귀순 가운데 가장 국민의 귓전에 남은 것은 1983년 이웅평 상위였다. 민방위훈련의 사이렌에 익숙한 국민들에게 ‘실제상황’이라는 멘트는 충격적이었으며 무엇보다 그가 몰고 온 미그 19기는 당시 공산권이 보유한 최첨단 기종으로 자유진영의 국가들의 지대한 관심을 모았다.
이처럼 과거 남북관계가 냉전의 틀 속에서 경직됐을 때 북한군의 귀순은 대단한 화제이자, 사건이었다. 특히 1967년 귀순한 조선통신사 부사장인 ‘위장간첩 이수근’은 아직까지도 논란의 여지를 남긴 사건으로 남았고, 북한 최고위층급인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의 귀순은 전 세계가 주목한 사례다. 1994년에는 현재 새누리당 국회의원이 된 조명철 김일성대학 교수가 3국을 통해 입국했다.
남북간의 군사적 대치상황에서 어처구니없는 일들도 벌어졌다. 과거 전방 3중 철책선을 돌파해 북한군이 귀순하고, 민간인이 철책선을 자르고 월북해도 북한군이 발표할 때까지 우리군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일도 있었다. 또 북한군이 전방부대 주변을 4일씩이나 왕래했으나 군당국은 주민이 신고하기까지 깜깜 무소식이었던 적도 있다.
지난 10월 2일 밤에도 국민들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전방에서 일어났다. 북한군 1명이 우리군이 자신한 CCTV와 철책, 열상장비(TOD), 그리고 경계근무를 뚫고 귀순했다. 그런데 귀순 병사가 우리 군인들이 취침 중이던 생활관의 문을 노크하고 귀순의사를 밝힐 때까지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았다.
그야말로 적의(敵意)를 갖고 침투한 공비였으면 어떤일이 벌어졌을까를 상상하면 모골이 송연하다.
국제정세와 정치적 판단, 그리고 남북의 필요에 의해 남북관계는 전진돼야 하고 평화는 민족적 염원이다.
하지만 지금은 남북이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대치상황임도 분명하다. 국군 덕분에 편안히 잠들어야 할 국민은 불안하다.
/김진호 편집이사·인천편집경영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