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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율, 그리고 똘레랑스

“당신이 존중받기를 원하면 우선 남을 존중하며, 당신의 정치적 이념과 종교적 신념이 존중받기를 원하면 우선 다른 사람의 정치적 이념과 종교적 신념을 존중하며, 당신과 다른 인종과 국적을 가진 사람을 존중하며, 그리고 당신과 다른 생활방식과 문화를 존중해야 합니다. 한마디로 ‘당신 것’이 존중받으려면 ‘남의 것’부터 존중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1995년에 출간된 홍세화의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에 나오는 말이다. 다음의 한문장을 곁들여 읽으면 똘레랑스의 의미가 더욱 선명해진다. “인간이 모두 똑같이 태어나지 않기 때문에 평등 개념이 창안되어야 했던 것이며, 인간이 모두 같은 이데올로기를 갖지 않기 때문에 인권 개념이 창안되었어야 했던 것입니다.”
문득 홍세화가 떠오른 데는 이유가 있다. ‘나는 빠리…’가 베스트셀러가 됐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의아해 했다. 저자나 책 때문만이 아니라 출판사 ‘창작과비평사(이하 창비)’ 때문이었다. 창비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됐다는 것은 그것 자체로 화제거리이면서 동시에 시대 변화의 전조로 읽힐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불과 몇 년후 파리의 망명 택시운전사 홍세화가 꿈에 그리던 고국 방문의 길을 텄다. 이후 그는 파리 생활을 정리하고 영구 귀국하여 예의 왕성한 필력과 정력적인 활동을 펴 진보진영의 대표적 활동가로 자리잡았다.
필자는 ‘나는 빠리의…’를 읽는 도중 여러차례 책장을 덮은 채 상념의 구두점들을 찍어내곤 했다. 책이 지루해서라거나 한자리에서 오랫동안 읽지 못하는 독서습관 탓이 아니었다. 순간순간 엄습해오는 감동을 주체하지 못했고, 하여 망설일 수밖에 없었고, 하여 감동을 음미하려 몸부림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40대 후반의 나이를 의심케 하는 저자의 섬세한 감성, 그 청년의 감수성이 뿜어내는 가슴 아플 정도로 명징한 추억담, 그리고 지금도 마로니에가 피어있는 마로니에공원에서 때론 노래에 때론 막걸리에 취해 널부러지던 청년 홍세화와 그의 무리들, 덧붙여 세대를 초월한 시대의 광대 임진택의 절창(絶唱) ‘청춘도 사랑도 다 마셔버리고’까지… 결국 책을 읽는 내내 중첩되어 다가오는 과거의 기억들이 도리 없이 필자를 상념에 젖도록 부추겼다.
그러나 오늘 새삼스레 홍세화를 떠올리는 이유는 청년기의 낭만과 추억을 향수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가 우리에게 설파했던 똘레랑스의 의미를 다시금 새겨 볼 필요를 느꼈기 때문이다.
재독 사회학자 송두율 교수의 37년만의 귀국에 대한 우리사회의 반응을 보면, 우리사회의 야만성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홍세화, 송두율은 모두 유신체제가 만들어낸 역사의 희생자들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들에게 보상은커녕 냉소를 보낸다. 심지어 아직도 냉전이데올로기의 망령에 휩싸인 일단의 무리들이 송 교수를 두고 간첩 운운하기까지 한다.
우리사회의 ‘야만성’을 치유할 약으로 홍세화는 ‘똘레랑스’를 소개했다. 반면, 송 교수는 학자답게 ‘민족, 통일, 그리고 새로운 북한관(觀)’이라는 실천적 과제를 던져주었다. 특히 90년대 이후 소개되기 시작한 송 교수의 통일에 대한 열망과 민족애가 담긴 저서들은 우리 학계에 신선한 충격이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사회는 아직도 그의 사상과 통일이론, 심지어 그의 육신조차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지 못하다.
유신(維新)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이미 끝났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유신 폭정에 저항했던 민주인사들에 대한 역사적 평가와 사회적 인식은 달라진 게 없다. 반면 유신 잔당들은 과거 친일세력들이 이승만 정권 하에서 영화를 누렸듯이 신군부 등장 이후 계속해서 이 사회의 주류로 활개를 치고 있다.
역사의 아이러니라 치부해 버리기엔 너무 화가 나는 일이다. 관용은 만인에게 공평할 때 미덕일 수 있다. 하물며 역사의 죄인에게 베푼 관용을 역사의 희생자들에게 베풀지 못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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