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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고중일"어머니 같은 큰누나"

 

오늘은 여느 때보다 늦게 퇴근을 했다. 아이들도 며칠 남지 않은 수능 시험 때문에 하루 종일 도서관에서 책과 씨름을 하다 자정이 다 돼 들어왔다. 모두들 바쁘게 살다보니 집안 식구가 한자리에 모이기조차 힘들다.

경비실에 택배가 와 있으니 찾아가라는 연락이 왔다. 낮에 집이 비어 있어 택배 기사가 맡기고 갔다는 것이다. 큰 상자 하나가 비좁은 경비실 바닥을 절반이나 차지하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큰누나가 보내온 것이라고 짐작했다. 며칠 전 큰누나가 나에게 전화를 걸어 주소가 바뀌지 않았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상자 속에는 황토 빛깔 밤고구마와 껍질이 붉고 탐스런 양파와 잘 영근 마늘이 빨간 고춧가루와 함께 봉지가 터질 듯이 담겨 있었다. 깨지지 쉬운 참기름 병은 수건으로 둘둘 말아 틈에 끼우고 정성스럽게 포장을 했다. 큰 누나는 농사를 짓는 것도 아니고 살림을 하는 조카들도 여럿인데 나까지 챙겨 주는 마음이 고마웠다.

방바닥에 풀어 놓고 누나한테 전화를 했다. 시장에 갔다가 네 생각이 나서 샀다고 하면서 부피만 컸지 먹어볼 것도 없다고 하면서 전화를 끊었다. 나는 형님이 두 분 계시고 누나도 세 명이나 된다. 지금은 자녀를 둘도 많다고들 하지만 그때는 그리 많은 것도 아니다. 형님 두 분은 연세가 일흔이 훨씬 넘으셨고 큰 누나도 내일 모레면 칠십이다. 나는 남들처럼 넉넉한 생활은 아니지만 동기간에 의좋게 살고 있는 형님과 누나들이 있어 행복하다. 그러나 모두 가는 세월에 주름진 얼굴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언제나 잘해 드리고 싶지만 마음뿐이다. 어렸을 때 형님들과 큰누나에 대한 기억은 별로 나지 않는다. 나이 차이가 많아 그렇겠지만 큰누나는 일찍 시집을 가서 더할 것이다.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읍내에 있는 중학교 입학시험을 치르던 날 누나가 시험장까지 따라 왔다. 그 당시에는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입학시험에 합격을 해야만 했다. 멀리 살던 큰누나가 무슨 일로 왔었는지 기억을 할 수 없지만 아버지와 어머니를 대신 따라 왔다. 아버지는 이런 일에 나서지 않으셨고 어머니는 몸이 아파 가실 수가 없었다. 누나는 고사장으로 들어서는 나를 보고 시험을 잘 보라고 하면서 시험이 끝날 때까지 추운 날씨에 시험장 밖을 서성거렸다.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취직해 대학에 가겠다고 서울로 내려와 공부를 하던 중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셨다. 일평생 몸이 아파 고생을 하시면서 막내아들 잘되기를 그렇게 바라셨던 어머니셨다. 큰누나는 엄마 없는 세상에서 어떻게 사냐고 하면서 나보다 더 슬퍼했다. 그 후 고향을 떠나 온지 사십년이 흘렀다. 비록 그 때 그 꿈은 다 이루지 못했다 하더라도 지금까지 행복한 가정을 이루며 열심히 살아왔다. 그동안 내 뒤에는 아버지 같은 두 분의 형님과 인정 많고 마음씨 고운 누나들이 있었다.

오십 중반의 나이를 넘긴 동생에게 사랑을 차곡차곡 담아 보내던 누나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까만 봉지마다 동여맨 누나의 솜씨가 어머니의 손길을 그대로 닮았다. 어머니의 사랑이 묻어나는 택배상자를 바라보며 어머니 같은 큰누나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

▲방송통신대 행정학과 졸업 ▲문학시대 동인 ▲한국문인협회 회원 ▲성남문인협회 이사 ▲경기도신인문학상, 성남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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