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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제 선진통일당 대표의 정치적 고향은 경기도다. 변호사로 활동하던 그를 YS(김영삼 전 대통령)가 발탁, 13대 총선의 공천장을 주었고 그는 안양에서 내리 두 차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무엇보다 그는 1995년 실시된 지방선거를 통해 선출된 첫 ‘민선 경기도지사’였다.

그는 수도권인 경기도에서 표를 통해 선출된 도백(道伯)임을 내세워 무섭게 상승했다. 물론 YS의 각별한 총애를 받아 최연소 노동부장관에 임명되는 등 관리를 받았다. 특히 경기도지사 당내 경선에서는 경기도 토박이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임사빈 전 경기도지사를 꺾는 데도 엄청난 지원이 있었다.

민선 경기도지사 이인제의 앞길은 그야말로 거침이 없었다. 1997년 40대였던 그는 신한국당 대통령후보 경선에 뛰어들어 이회창 후보와 일합을 겨뤘다. 그는 졌다. 하지만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경선에 앞서 그는 경기도지사 직을 언제 던질까를 고민하던 즈음, 과천의 한 호텔에서 기자들과 자리를 함께 한 적이 있다. 그 자리에서 처음으로 ‘도지사 사퇴, 대선 출마’의 결심이 발설됐다. 그는 “국민이 나를 원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니 신한국당 내 후보경선의 패배는 총재를 지내며 당내 세력이 앞선 이회창 후보 측에 진 것이지 국민의 선택이 아니었다고 해석했다. 경선 패배 후 탈당은 당연했고, 국민신당 창당과 함께 대선에 출마해 500만 표에 가까운 득표력을 과시했다.

이 500만 표, 정확히 492만5천591표는 그에게 정치적 자산이자 짐이 됐다. 20%에 가까운 국민이 그를 대통령 감으로 선택했다는 자존심은 그를 남의 밑에서 ‘2인자’가 되는 것을 거부하게 만들었다. 늘 1등만을 추구했고, 그의 정치경력은 탈당과 입당, 창당 등으로 얼룩져 갔다. 정치적 고향을 떠나 생태적 고향인 논산으로 돌아가 6선 국회의원이라는 탑을 쌓았지만 봉황을 그리던 그에게 만족을 줄 순 없어 보였다. 대표적인 ‘철새 정치인’이라는 비아냥이 나오는 동안 당을 옮겨가며 대선에 출마도 했지만 0.7% 지지율을 보이는 등 그는 국민들의 뇌리에서 잊혀갔다.

그런 그가 연말 대선을 앞두고 자신이 이끌던 선진당과 새누리당의 합당을 선언했다. 하지만 초라해진 선진당을 그나마 지탱하던 대전시당 위원장, 충남도당 위원장 등 충청권 실세들이 탈당하는 역풍이 불고 있다.

유력한 대권후보에서 지역 맹주 자리마저 위협받는 가운데 이제 ‘충청권 대표’라는 곳간 열쇠까지 넘겨준 정치인 이인제의 미래가 암울하다.

큰 꿈을 꾸었던 경기도지사 출신 거물정치인의 추락이 안타깝다.

김진호 편집이사·인천편집경영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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