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와 골목상권은 대립관계다. 서로 고객을 유치하기 위한 경쟁관계 때문이 아니다. 골목상권은 대형마트에 고객을 고스란히 빼앗겨 왔다. 경쟁상대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대형마트가 운영시간을 새벽까지 늘리게 되면 그만큼 골목상권은 타격을 입는다. 골목상권이 대형마트를 당할 재간이 없다. 시장경제와 무한경쟁시대에 일방적으로 양보를 강요하는 것도 썩 좋은 방법은 아니지만 골목상권의 생존권을 건 호소를 무시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국내 대형마트 3사인 홈플러스와 이마트, 롯데마트 대표들은 지난달 22일 전국상인연합회와 한국슈퍼마켓협동조합 대표들과 만나 고무적인 상생방안에 합의했다. 전국 곳곳에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대형마트와 골목상권이 처음으로 만나 자율적인 상생방안을 이끌어 낸 것은 평가받을 만한 일이다.
하지만 상생 합의문을 발표한 다음날 홈플러스가 서울 관악구청에 대규모 점포 개설등록을 신청했다고 한다. 대형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SSM)이 회원사인 한국체인스토어협회 회장사인 홈플러스가 앞장서서 골목상권과의 약속을 하루 만에 뒤집은 것이다.
같은 날 오산시에서도 홈플러스가 세교점 개설 등록을 신청했다. 특히 대형유통업계와 중소상인들이 협의한 인구 30만 미만의 시에는 출점을 자제한다는 약속도 어겼다. 홈플러스 측은 2010년과 2011년 부지매입과 건축허가를 이미 끝내고 지난 9월 오산시가 대규모 점포 개설 등록 신청서 검토를 요청해 10월 22일 수정안을 다시 제출했을 뿐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오산시장상인회는 인구 20만이 채 되지 않는 소도시에 롯데마트와 이마트에 이어 홈플러스까지 들어오면 지역 중소상인들은 심각한 타격을 입는다고 항변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수원 호매실동 홈플러스 입정예정지에서는 19일 칠보상인회를 비롯, 전국유통상인연합회, 수원경실련, 경기남부식자재협동조합 관계자들이 규탄대회를 갖고 “500여 자영업체가 밀집된 칠보상권에서 불과 200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홈플러스가 입점하면 칠보 골목상권은 직격탄을 맞고 중소상인들의 생존권은 벼랑에 내몰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골목상권을 무시하는 듯한 대형마트의 오만한 행보는 점입가경이다. 영업제한 조치를 둘러싼 지자체의 조례 개정에 대해 헌법소원을 비롯한 소송전을 전국 지자체를 상대로 벌여 대부분 지역에서 무력화에 성공하기도 했다. 홈플러스 측은 물건 하나 더 팔기 위해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의 꼼수를 번복한다면 고객은 떠나간다는 진리를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