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떨어져 노랗게 누워있는 은행잎들 사이로 추위에 떨고 있는 아기새 발자국처럼 선명하게 찍혀있는 단풍들의 새빨간 옹아리. 더하여 자지러지게 웃어젖히는 아이들의 웃음처럼 켜켜로 얽혀 활짝 피어있는 단풍은 그야말로 꽃 중에 꽃이다. 새순을 돋아 생을 시작하여 청춘을 보내고 삶을 정리하는 그 마지막이, 그 끝이 이리 아름다울 수 있다니, 진정 내가 닮고 싶은 모습이다.
한때 화려했던 자신의 모습조차도 미련 없이 훌훌 던져버리고 겨울 속으로 초연히 떠날 줄 아는 그 단호한 늦가을. 왁자한 사람들 틈으로 빨갛게 불타오르는 속리산의 11월 단풍은 정말 가슴을 싸~ 하게 하는 희열을 맛보게 했다.
자기 삶의 색을 숨김없이 보여주어야 할 때가 되어버린 나이. 나에게도 그런 가을이 왔다. 그 색이 갈참나무처럼 갈색으로 드러날지, 은행나무처럼 샛노랗게 드러날지, 빨간 단풍으로 드러날지는 알 수 없는 일. 누구나 멋있게 우아하고 분위기 있는 그런 생의 가을을 기다렸을 거다. 그러나 그런 멋진 가을이 아무에게나 다 주어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내 삶에 가을이 오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때로는 사람들이 선뜻 받아들이기 힘들어 그 가을을 완강히 거부하기도 한다. 그들은 늘 젊어 봄이기를 원하는 것이다. 때로는 문신을 하고, 비싼 화장품을 바르고, 끝내 성형을 하고, 몸매를 다듬고, 주름을 없애고, 보톡스를 맞는 등 젊어지기를 갈구한다. 숱한 정성을 들여 자신에게 찾아온 가을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이미 그런 이들의 심리를 파악해버린 텔레비전에서는 오늘도 동안의 40대를 소개하고, 나이를 알 수 없는 젊음의 비결을 쏟아놓으며 상품광고를 하고 있다. 마치 자연스럽게 늙어가고 있는 내 모습이 시대에 뒤떨어진 원시인 정도로 치부되고 있는 것처럼. 언제부터인가 하나 둘 눈에 띄기 시작한 흰 머리칼을 염색으로 숨겨보고, 눈가에 자리 잡기 시작한 주름에 조금 비싼 아이크림을 바르며 더 늦기 전에 알아보라는 피부숍을 물색해 보았던 나. 나 또한 내게 찾아온 가을이 못내 섭섭하고 아직은 그 가을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 내가 본 속리산의 가을은 그저 가을이라 아름다웠다. 초록의 청춘 뒤에 오는 가을이기에, 겨울을 맞을 준비를 하는 그 초연한 가을이기에, 숨김없이 드러내고 자기 색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그 가을이기에 더욱 아름다웠다. 가을은 그저 젊음을 무사히 건너 삶을 포기하지 않고 여행한 자에게만 주어지는 성스러운 보상이 아닐까. 그러니 나에게 찾아온 내 인생의 가을, 이 가을 또한 자연 속의 저 가을처럼 당당한 모습이어야 한다.
다른 모든 단풍나무가 빨갛게 물들어 있는 중에 유독 한 그루 단풍나무만 진한 초록을 그대로 품은 채 시치미를 떼고 있는 것이 왠지 너무 안쓰럽게 보였다. 미처 자기 잎을 떨구지도 못하고 맞을 서리를 어찌 저 몸으로 감당할까, 추위에 얼어붙을 나뭇잎을 생각하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생을 미리 준비하지 못한 철없는 단풍나무를 보며 그저 다른 나무와 더불어 나에게 찾아온 가을을 온전히 받아들여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한참을 더 걸어가야 할 내 인생의 가을은 오늘도 그렇게 진하게 숙성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에세이 문예 등단 ▲평택 문협 회원 ▲한국에세이작가연대 회원 ▲독서토론논술 문화원 원장(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