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18 (금)

  • 흐림동두천 23.0℃
  • 흐림강릉 20.8℃
  • 서울 27.9℃
  • 구름많음대전 28.0℃
  • 흐림대구 27.6℃
  • 구름많음울산 25.5℃
  • 구름조금광주 28.6℃
  • 구름조금부산 28.2℃
  • 구름조금고창 28.4℃
  • 구름많음제주 29.8℃
  • 흐림강화 26.6℃
  • 구름많음보은 23.2℃
  • 구름많음금산 27.2℃
  • 구름많음강진군 29.6℃
  • 구름많음경주시 26.8℃
  • 맑음거제 28.6℃
기상청 제공

[생활에세이]정진윤"갑자기"

 

살다보면 갑자기 일어나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 중에는 깜짝 이벤트처럼 기쁨을 선물하기도 하고 졸지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듯한 아찔함을 느낄 사이도 없이 돌이킬 수 없는 불행으로 빠지기도 한다.

올해는 예년보다 훨씬 빠르게 첫눈이 왔다.

늦은 가을 빗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먼 산에 눈이 덮인 정경이 신비롭기까지 해서 추운 줄도 모르고 서툰 솜씨로 휴대전화에 담기도 했다.

불경기를 실감케 하려는지 손님이 없어 지루한 오후 정적을 깨는 문소리를 신호로 손발은 통통 튀기 시작한다.

세상의 모든 엄마들이 그렇겠지만 아들을 군에 보내고 세상의 모든 빛이 순간에 꺼지는 것 같은 암울함 속에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 때 전화벨 넘어서 들리는 아들의 목소리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잠시 짬을 이용해 동창 카페에 들어가 그리운 이름을 찾는 찰나, 나를 부르는 남편의 목소리가 마당을 건너온다.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제각기 다른 얼굴이지만 표정은 하나 같이 웃음을 담고 있다.

목소리도 한 옥타브 높아져서 일일이 끌어안고 한참이나 야단스런 장면을 연출하다 겨우 자리를 잡고 앉아 밀린 수다를 떠는 일도 갑자기 생기는 기쁨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기쁜 일만 갑자기 찾아오지는 않는다. 벌써 오래된 일이지만 설을 지내고 다음날 아버지는 속이 거북하시다고 하시며 소화제를 드시고 자리에 누우셨다 .

점점 참기 어려운 고통을 안고 병원으로 가셔서 나중에 서울 종합병원에 입원하셨고 끝내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말과 함께 집으로 오셔서 우리와 영원한 이별을 하셨다.

시아버지도 추석 다음날 쓰러져 서울까지 가셔서 응급실로, 중환자실로 이어지는 병원치례를 반복하시다 그 이듬해 하늘나라로 가셨다.

이렇게 사소한 시작으로 우리의 삶에 커다란 금을 긋기도 한다.

평소에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 나에게 더 없이 잘해서 남들이 일컬어 열 자식 안 부러운 대녀라고 할 정도로 몸도 마음도 가깝게 살던 사람이 어느 날 금융기관 부채와 사채업자들의 돈과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의 쌈짓돈까지 몽땅 털어 떠나고 흉흉한 소문과 보증채무를 떠안았을 때의 그 황당함이라니.

나에게 남겨진 단 한 가지의 소원은 내일이 오지 않기를 바라는 것뿐이었지만 그 후로도 수없는 내일이 오고 갔다. 오고간 내일의 숫자에 버금가는 갑자기를 동반하고, 덕분에 웬만한 일에는 쉽게 절망하지 않을 정도의 내공이 쌓였다.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돌이켜 보면 갑자기 내 앞에 오는 모든 일이 결코 갑자기는 아닐지도 모른다.

어떤 신호로도 예고를 했음에도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고 허둥대고 불평하고 또 낙심하고 살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고난이 오면 마음을 다잡고 기쁨 앞에서 오히려 주변을 세심하게 살피노라면 어떤 고통에도 무너지지 않으리. 봄을 맞이하기 위하여 추운 겨울 땅 끝까지 내리는 눈 속에 고요히 머무는 자연처럼.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