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에서 자신의 정치적 색깔을 드러내는 것은 유명 연예인이 동성애자임을 밝히는 ‘커밍아웃(coming out)’보다 힘들다.
자비(慈悲)로 유명한 스님도, 사랑을 실천하는 목사님도, 삶의 큰 족적을 남긴 오피니언 리더도 자신이 어느 정파를 지지한다고 선언하는 순간 만신창이가 된다. 사회적 존경을 받던 이들의 SNS나 인터넷 홈페이지는 곧장 욕설로 도배되기 일쑤다. 바로 직전까지 자신들에 대한 지지의사를 이끌어내려 온갖 노력을 다하던 정당이나 정치인들은 그를 적으로 간주하고 어떤 권위도 인정하려들지 않는다.
이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네 필부들의 삶도 다르지 않다. 언제부턴가 동창회, 친목회 등 모임에서의 정치적 발언은 곧바로 사회적 매장으로 이어지는 분위기다. 공개된 장소에서 정치적 커밍아웃을 선언하는 순간, 모임 참석자 중 절반은 그에게 등을 돌리고, 그가 참석하는 모임에는 절대 참석하지 않을 것임을 외친다. 그러니 특정 후보가 당선되면 “이민가겠다”는 말이 농담처럼 들리지 않는다.
운전대를 잡으면 난폭해지는 운전습관처럼 컴퓨터 앞에만 앉으면 정치적 대척점에 선 후보나 그룹에 대해 포악한 언어로 쑥대밭을 만든다. SNS에 어느 후보를 이런 이유에서 지지한다는 문자를 남기면, 아들또래에게 육두문자 섞인 댓글이 날아올 것임을 감수해야 한다. 심지어 신상이 털리고, 과거 발언이나 글을 교묘히 편집한 댓글로 인해 이중인격자, 인간말종이 되는 것도 오랜 시간이 필요 없다.
정치권 우스갯소리 가운데 참새시리즈가 있다. 참새 10마리가 전깃줄에 앉았는데, 맨 왼쪽에 앉은 참새가 오른쪽 참새들을 향해 “웬 우익 꼴통들이 이리 많으냐”고 소리쳤더니 맨 오른쪽 참새가 “좌빨들 모두 입 다물어”라고 되받았다는 것이다.
썰렁할지 몰라도 이게 우리 사회의 정치적 현실이다. 오른쪽에서 보면 모두가 좌익이고, 왼쪽에서 보면 모두가 우익이다.
그러다보니 우리 사회에서 정치적 중립을 지키기란 팥으로 메주를 쑤기보다 힘들다. 흑백(黑白)이 분명해야 속이 풀리는 정치적 환경에서 중립은 자칫 회색분자로 매도되기 십상인 것이다. 따라서 정치적 이념이나 진영이 다를 경우 제거돼야 할 대상일 뿐이다.
그러니 대선정국은 전쟁이다. 지면 죽는 서바이벌 게임이다. 이는 곧바로 승자의 포용이 아닌 정치적 보복으로 이어져 악순환을 되풀이한다. 대통령이 돼도 반쪽의 반대에 흔들리고, 여전히 적군을 저격하려는 상대의 총부리 앞에서 불안하다.
대선 이후가 더욱 걱정이다.
김진호 편집이사·인천편집경영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