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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문화]오현규"할미꽃 사랑"

 

부모 섬기는 도리인 효도는 물질이 아닌 진솔한 마음으로 해야 한다

우리는 미래를 함께할 지도자를 선택함으로써 그동안의 갈등을 봉합하고 새로운 시대의 장막을 열게 됐다. 이와 함께 한 해가 저물어 가면서 마지막 남은 한 장의 달력, 그리고 거리를 장식한 크리스마스트리와 함께 그 의미를 되새겨 본다. 새해의 심성을 추슬러 보면서 꿈을 가꾸며 내일의 봄을 기다리는 오늘, 문득 이름 모를 무덤가에서 수많은 사연을 담은 봄이 온다는 첫 소식을 길목에서 반겨주는 할미꽃을 상상하여 본다.

할미꽃 하면 모정(母情)을 품고 흐르는 여울져가는 내 마음의 물길 같기도 하며, 사람의 애틋한 사랑이 함축되어 있는 무조건적인 내리 사랑의 상징인양 우리 가슴을 아리게 하여 준다.

할미꽃은 아름답지도 않고, 향기로움도 화려함도 없으며, 아무도 찾아주지도 돌봐주지도 않으나 모진 한파를 이겨내며 머리대가 숙여진 채로 꽃을 피운다. 마치 할머니의 흰 머리칼과도 같이 깃털처럼 퍼진 털이 밀생하는 암술대가 남아 있다.

12월 함박눈이 내리던 날, 경기도문화의전당에서 전통과 창작을 상징하는 ‘비화추의 열 번째 장정희 춤판’이 효(孝)를 상징하는 피날레를 모티브로 하여 관객들의 가슴을 미어지게 하는 공연이 있었다. 수준 높은 기획력의 공연에서 효(孝)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고 항상 우리 가까이에 있다는 메시지를 전해준 공연이었다.

송봉수의 노래 할미꽃 사연과 김영수의 무대인 그림퍼포먼스, 최은효의 회심곡 연출은 가요와 회화와 우리민속곡과 춤이 함께 어우러지는 종합예술 ‘창작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옛날에 남편을 일찍 여의고 세 딸과 함께 꿈을 갖고 살고 있었다. 세 자매를 애지중지 키우면서 함께 살던 할머니가 딸들을 시집보내고 외로움에 몸져누워 지내다가 간신히 지팡이를 짚고 딸들이 사는 모습을 볼 겸 집을 나섰다.

할머니는 큰딸과 둘째딸이 시부모를 모셔야 되는 일로 가족 간의 어둠이 있음을 알고 큰딸과 둘째 딸의 집을 떠난 할머니는 막내딸의 집으로 향했다.

어느덧 12월! 차가운 바람을 안고 할머니는 산 넘어 막내딸을 찾아간다. 숨이 차고 다리가 휘청거린다. 길을 서둘러 고개에 오른 할머니는 성급하게 막내딸의 이름을 불렀다. 할머니는 너무나 숨이 차서 고개에서 쓰러졌다.

“순아, 순아!” 하고 막내딸의 이름을 부르다 그만 잠이 들면서 영영 세상을 뜨신 것이다. 그 후 막내딸은 할머니를 양지바른 곳에 묻어드렸다. 그 이듬해 봄, 할머니의 무덤에 돋아난 꽃이 곧 <할미꽃>의 사연이다.

“어머님 무덤 앞에 외로운 할미꽃 / 이 자식을 바라보며 눈물집니다 / 젊어서도 늙어서도 꼬부라진 할미꽃 / 그 사연 밤을 새워 들려주시던 / 어머님의 그 목소리, 어머님의 그 모습이 / 그 모습이 허공에 번져가네.” 향토가수 송봉수의 할미꽃 사연의 노래가 아련히 다가온다.

효(孝)는 자식이 부모를 섬기는 도리를 뜻하는 유교의 도덕규범으로, 은대(殷代)의 복사(卜辭)나 금문(金文) 등에 보이며, ‘시경’, ‘서경’ 등의 기록에도 효에 관한 내용이 있다.

필자는 현재 한국사회의 부모와 자식 간 가족 구성에서의 현상을 연관 지어 현 시대의 효(孝·filial duty)를 정의하면, 우리 발음으로 ‘HYO’로 발음된다. 따라서 첫 머리글자를 영어로 ‘Harmony of the Young and Old’, 즉 젊은 사람(자식)과 늙은 사람(부모)의 ‘조화’라는 뜻으로 풀어본다.

효의 깊은 뜻은 ‘今之孝者 是謂能養 至於犬馬 皆能有養 不敬 何以別乎(금지효자 시위능양 지어견마 개능유양 불경 하이별호)다.

다시 말해 오늘날의 효는 부모를 잘 공양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반려동물이라 하여 개(애완견)와 말도 잘 기르고 있으니 사람으로서 공경하지 않으면 그 무엇으로 구별하겠는가. 잘 먹이고 잘 입힌다고 효(孝)를 다하고 있다고 할 수 없다는 뜻이다.

개와 말을 부모보다 더 가까이 하는 현 사회적 현상을 볼 때 그 먹이고 입히는 것에 ‘공경(恭敬)하는 마음’이 없다면 부모를 봉양함이 짐승을 먹여 기르는 것과 무엇이 다를 수 있다고 할 수 있겠는지. 효도는 물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진솔한 ‘마음’이 있어야 하는 것임을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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