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풍경은 한 폭의 명화이며 마음과 발의 표적이 된다. 그 표적은 광고에 의해, 혹은 무심코 지나다 만날 수도 있고, 떠도는 소문에 의해 발이 겨누는 대상이 되기도 한다.
많은 돈을 들여서 화려하게 치장하였거나 깎은 듯이 다듬어놓았다고 해서 다 좋은 풍경은 아니다. 아무리 보잘 것 없는 곳이라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느낌의 시위를 당기게 된다면 좋은 풍경인 것이다. 요즘같이 개발이 대세를 이루는 시대에 자연 그대로 남아있는 곳에서 우린 좋은 풍경을 만난다. 그곳이 갈대밭 사이사이 질펀하게 제 속을 다 내놓고 갈꽃과 바람과 바닷물의 흐름 속에 유영하고 있는 시흥갯골이다.
몇 달 동안 글쓰기수업을 한 그녀가 그림 그리는 일에 몰두하게 되어 미안하다며 저녁식사라도 함께하자고 제안한다. 저녁식사를 하기에는 이른 시간이다. 나는 “우리 바람을 쐬러 나가면 어때요?” 하고는 ‘시흥갯골생태공원’으로 달렸다. 한동안 발길이 뜸했던 곳이라 벌써부터 그곳의 초겨울 느낌을 그리워하던 참이다.
여백의미의 감동 만나는 곳
포동을 지나 갯골로 들어서 정수장에 차를 대놓고 나니 갯골은 물이 가득 들어와 노을이 들기 시작하고 있다. 고개를 돌리니 허허벌판 갯벌은 온통 갈대꽃으로 덮여 초겨울바람에 휩쓸리고 저녁 역광을 받은 갈대꽃들이 눈부셔 제대로 바라볼 수가 없다. 그녀는 저녁 빛에 빛나는 갈꽃과 갯골 사이에서 감동스런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하고 감탄사를 보낸다.
갯골 중심으로 들어섰을 때 오솔길 위쪽엔 갈대 사이사이 칠면초와 염생식물의 흔적이 아직도 붉은 기운으로 폐허 같은 풍경을 지어내고 있다. 그 아래쪽엔 한 길이 넘는 갈대가 바람에 흔들릴 적마다 마음이 온통 뒤척인다. 나는 이곳을 올 적마다 여백의 미가 주는 감동을 만나는 곳이라고 말한다.
소금으로는 삶의 터전이 될 수 없어서 사람들이 모두 떠나버린 곳, 수인선 협궤열차도, 염부들도, 소금창고도 훌쩍 가버리고 폐허가 된 곳이다, 우리가 절망을 딛고 절벽을 타고 오르는 사이, 갈대와 염생초와 농게, 방게, 짱둥어와 각종 어류와 많은 포유류와 100여 종의 각종 새가 찾아들기 시작했다. 개개비, 백로, 도요새, 쑥새, 중대백로, 쇠백로 등 많은 새들은 사람들이 안 보는 틈을 타서 물가에서 노는데 마치 무용을 하듯 재롱을 부리는 갯골은 그야말로 자연생태가 살아 숨 쉬는 곳이 되어 있었다.
한참을 걸어가니 ‘갈숲생태문화탐방로’가 있는 오솔길이 나온다. 갈대 사이 오솔길이다. 이곳에선 누군가 숨어도 찾을 수 없게 갈대가 한 길이 넘는 곳이다. 오솔길에서 갯골의 물소리를 들으며 걷다보면 갈래가 생긴다. 갈래를 따르다보니 습지를 만난다. 습지 위에 다리가 놓여있고 습지 중심에 전망대가 우뚝 솟아 갯골 전체의 풍경을 감상하게 된다.
지난번 최문자 시인과 이곳에 왔을 때 서울과 가까운 도심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만날 줄은 몰랐다며 감탄하시던 생각이 난다. 부드러운 사행성의 갯골이 흐르는 갈대밭이다. 내가 처음 이곳을 왔을 때 감동하던 것을 지금 그녀가 “어머, 이렇게 멋진 곳이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는 줄 몰랐어요” 하며 감탄사를 연신하고 있다.
좋은 풍경,예술가에겐 소중한 재산
좋은 풍경은 복잡한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삶의 쉼터이기도 하지만 예술가에게 무엇보다 소중한 재산이다.
허허벌판이지만 그 속에서 느꼈을 어떤 쓸쓸함과 기다림, 벅차오르는 슬픔과 환희, 갖가지로 밀려오는 감동들이 있다.
그녀도 나름대로 많은 감동을 느꼈는지 차분히 하는 대화 속에 얼굴이 상기되어 사방을 둘러본다. 바람이 허공을 가르고 갈꽃이 휠 때마다 그녀의 심호흡이 들린다. 잔잔한 갯물의 흐름을 감지하면서 갯골엔 노을이 진하게 드리워진다. 갈대꽃이 처연한 초겨울의 갯골에서 연신 감동하던 그녀에게 오늘의 풍경은 재산목록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목록을 펴들고 표적을 향하는 붓끝이 오늘의 감동을 그려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