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를 전공하고 자치현장에서 강산이 두 번 바뀌는 동안 한국자치와 관련한 오만가지 꼴을 보아온 필자에게 혹여 누군가 ‘역대 단체장 가운데 지방분권의 본질에 대해 가장 깊은 고민을 한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나는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조순 전 서울특별시장’이라고 대답하고 싶다.
그는 1997년 7월, 서울시 행정을 묻는 기자에게 “명색이 서울시장인데 교통신호등 하나 마음대로 달 수 없다. 시민들은 민선시장이 많은 권한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실제로 시장 단독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매우 적다.” 고 답했다.
지금 거듭 생각해 봐도 제도에 대한 이해가 미약한 사람들에게 당시의 지방분권 상태를 그렇게 압축해서 표현하고 있음이 그저 놀랍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지금은 얼마나 어떻게 달라졌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거의 달라진 게 없다. ‘중앙사무의 지방이양’-솔직히 말하면 과거 자치의 중단으로 본래의 지방사무를 중앙정부가 쥐고 수행해 온 방식을 두고 ‘중앙사무의 이양’이라는 말도 ‘지방사무의 환원’으로 수정할 필요가 있겠다-을 줄기차게 언급해 왔지만 현재까지 과시적 분권만이 난무했을 뿐 지방에서 느끼는 실제적 분권은 미약하기 이를 데 없다.
오죽하면 지방에서 대한민국 자치는 ‘2:8의 자치’라며 조롱을 품은 좌절로 날마다 세월을 한탄하고 있겠는가. 몇 번의 정권이 바뀌는 경험을 했지만, 정부 초기 늘 비슷한 수준에서 분권의 필요를 강조하다가 지속적 탄력을 유지하지 못하고 관심 밖으로 밀려나 볼품없는 결과를 맞아야 했던 거 아닌가.
사실 정치인을 포함한 중앙정부 편에 있는 구성원 등 이 문제를 제도적으로 풀어낼 중심세력들 가운데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지역에서 바라는 정도의 지방분권에는 그리 관심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심한 평가인지 모르겠으나 정치적인 언설만 외연을 넓혀왔다고 해야 할 판이다.
지방분권은 특정정권의 정책이 아니며 지방의 민원을 해소하는 차원의 선택도 아닌, 깨질 대로 깨져 있는 지방과 지역의 밥이요 글로벌 환경에서 한국 전체의 생존인데도 말이다.
그렇다면 새 정부에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할까? 의외로 간단하다. 곧 취임하게 될 대통령의 분권에 대한 철학을 왜곡하여, 지방분권에 역행하는 무리들을 효과적으로 걷어내고 통치권 차원에서 분권의 진행과 수준을 중앙이 아닌 지방의 수준에서 주기적으로 확인하면 된다.
그게 끝이다. 새로운 방법론은 불필요하다. 지금까지 거론되고 정리된 사항들에 관해 의지를 가지고 실천하기만 하면 된다는 말이다.
이를 위해 우선적으로 다음의 사항을 제시한다. 첫째, 지금까지 몇 가지로 구분된 지방분권 추진기구를 정비하고 유사기구를 통합하여 단일체제를 갖추어야 한다. 즉 2013년과 2014년에 종료되는 ‘지방분권촉진위원회’와 ‘지방행정체제개편위원회’를 지방분권을 대전제로 일괄분권을 추진하는 기구로 통합되어야 한다.
둘째, 국회에서의 지방자치에 관한 관계법률을 제정할 때, 일본의 예처럼 지방정부의 의견을 듣도록 지방자치법에 강제하도록 함으로써 적어도 지방자치에 관한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국회가 입법권의 독점을 전제로 지방의 의사가 외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셋째,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 그리고 지방공무원의 지방분권 실현에 대한 의지를 정렬하는 문제로서, 특히 단체장과 의회의 경우는 지방자치법 제165조에 보장된 단체의 협력을 통해 분권의 요구를 지속화하여야 한다.
중앙공무원 78%가 더 이상 줄 것 없다고 반응한 반면, 지방공무원은 겨우 17%만이 분권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있다.
유럽에서 가장 중앙집권적이었던 프랑스가 2003년 베르사이유궁전에서 나폴레옹법전 이후 최초로 헌법에 분권을 명시한 것과 크레송 총리가 파리에 있는 국립행정학교(ENA)를 무려 480km나 떨어진 ‘스트라스부르’로 이전 결정할 때 동문들로부터 제명의 협박에 맞서 뜻을 굽히지 않은 이유와 1999년 일본의 지방분권일괄추진법을 실현한 뜻이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라 당장 닥친 우리의 생존이라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