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편안히 계시는지요? 벌써 아버지 가신 지 49일이나 지났습니다. 아버지 모습이 몹시 그리워 동트기 전 이른 새벽부터 일어나 아버지 생각에 눈시울이 붉어지고 가슴이 미어집니다. 아버지, 홀로 계신 어머니께도 전화 자주 드리고 자주 찾아뵙고 있습니다. 저희들 서로 아껴주며 잘 지내고 있습니다. 저희들 흐뭇하게 지켜봐 주시고 편안히 잘 가세요. 아버지--- 아버지--- 막내아들 올림.”
살가운 후배가 부친상을 당한 후 49재를 맞아 ‘아버님 전상서’라는 애달픈 사부곡(思父曲)을 SNS에 올렸다. 평소 막내아들이어서 더욱 귀여움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공직자였던 부친을 사표(師表)로 공직에 들어선 그였다. 평소 몸가짐이 바르고 빈틈이라고는 없었지만 장례식장에서 만난 그는 황망함에 얼굴에는 눈물자국이 선명했다. 60대 중반의 한창 나이에 암으로 돌아가신 부친에 대한 그리움이 온 몸에 투영돼 있었다.
필자도 15년 전, 60대 중반이던 아버지가 암과의 짧은 싸움 끝에 허망하게 돌아가시는 모습을 지켜봤다. 서울의 한 병원에서 건강검진 중 발견된 암은 대형병원에서 수술을 할 수 없다며 포기하기까지 불과 1주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돌아가시기까지 3개월 남짓으로 참으로 순식간이었다. 간부터 시작된 암이 모든 장기로 전이됐다. 그때부터 가족들은 좋다는 음식이나 기치료 등 대체의학에 매달렸으나 하릴없었다.
병원과 집을 오가며 요양하시던 아버지가 새 구두를 찾으셨다. 발이 부어 병원에 가실 때 신는 구두가 맞지 않는다는 말씀이셨다.
굽이 푹신하다는 구두를 사들고 가는 차안에서 절대자에게 빌었다. 제발 이 구두가 닳아 없어질 때까지만 생존하시게 해달라고.
불과 10여일 후에 또 다른 전화를 받았다. 이번에는 양말이 발에 들어가지 않으니 신축성이 좋은 큰 양말을 사오라는 전언이었다. 이번에도 양말을 사들고 가는 차안에서 “제발, 이 양말에 구멍이 날 때까지만 우리 곁에 머물게 해주세요”라는 요지의 간절한 기도를 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사들고 간 양말 5켤레 가운데 겨우 2켤레만 신어보신 채 우리와 헤어졌다.
누구에게나 ‘아버지’라는 이름은 그리움인 듯하다.
김진호 편집이사·인천편집경영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