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오산·수원 시민통합추진위원회가 엊그제 화성시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소송은 일견 당연한 수순이다. 지난해 12월 수원지방법원이 통추위의 손을 들어주었을 때부터 예견 가능한 일이었다. 통합에 찬성하는 주민 1만3천여명의 서명을 받아 제출한 통합건의서를 화성시가 1천700여명만 인정할 수 있다며 반려한 것은 잘못이라는 게 판결 요지다. 통추위로서는 고생 끝에 받아낸 건의서가 일축된 데 대해 못내 억울한 마음이 들 수밖에 없다. 인지상정이다. 화성시가 통합무산 의도로 각하 결정을 내렸다고 보는 통추위의 심정도 십분 이해가 된다.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화성·오산·수원 통합논의가 이번 소송을 계기로 재점화 될지는 아직 판단하기 이르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통합이 감정의 골을 넓히는 방식으로는 결코 이뤄질 수 없고, 설사 성공한다 해도 실익이 없다는 사실이다. 통추위 측은 화성시로부터 금전적 배상을 받아내는 동시에 수원시 반정동 일대에 돔구장을 유치함으로써 새로운 통합의 구심점과 동력을 삼겠다는 의지를 비쳤다. 하지만 화성시는 “분열을 조장하는 소송”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법원이 어떤 결정을 내리든 감정의 골은 깊어질 수밖에 없어 보인다.
행정구역 통합은 어디까지나 합리적으로 풀어가야 할 문제다. 통합에는 당연히 양면성이 존재한다. 지자체마다 이해관계가 다르고, 각 지자체와 시민사회의 관점이 다르며, 시민사회 내에도 다양한 입장이 있다. 이런 마당에 “통합만이 지역발전의 길”이라는 주장은 허구에 가깝다. 반대로 “통합결사반대”는 우스꽝스러운 구호일 따름이다. 이해가 상충하고, 명암이 대비되는 일일수록 감정적 방식이 아니라 실질적 방식으로 풀어나가는 게 순리일 터이다. 소송은 차선도 되지 못하는 선택이라는 우려를 떨치기 어렵다.
화성·오산·수원은 정조시대 이래 같은 역사와 문화를 공유해 왔다. 급속한 개발의 여파로 이제는 분화되었지만, 한 세대 전까지만 해도 같은 상권, 같은 생활권으로 살았다. 진정한 지역통합을 이루려면 문화적 뿌리를 재확인하는 작업부터 하는 게 맞다. 세 도시가 마음만 모으면 학술과 문화 분야에서 협력할 일은 많다. 이를 제쳐두고 일단 행정구역부터 합치자는 것은 마차를 말 앞에 두자는 얘기처럼 들린다.
시민 생활이라는 측면에서도 택시 운행구역 단일화 같은, 작지만 실용적인 일부터 차근차근 풀어가는 게 통합을 앞당기는 지름길이다. 올 하반기부터는 지방선거 국면에 들어간다. 통합논의를 앞세운 소지역주의가 기승을 부리게 해서는 곤란하다. 화성·오산·수원 통추위는 3개 지역 시민사회의 바람을 넓고 깊게 읽으면서 향후 행보를 이어가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