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7월, 공중파 방송의 기자가 특정 재벌에 대한 정보당국의 도청 녹취록을 보도해 엄청난 파문이 일었다. 녹취록에는 불법 대선자금관련 파괴력 높은 내용이 담겨 시장에 회자됐다.
그 가운데는 국민들의 관심을 집중시킨 또 하나의 ‘빅 이슈’가 담겼다. 바로 현직 검찰 간부들이 재벌로부터 떡값 명목으로 거액의 금품을 수수했다는 내용이다. 소문으로만 들었던 재벌의 ‘검찰 길들이기’가 실재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국민의 지대한 관심을 끌었다.
그런데 공개된 ‘떡값 검사’들은 모두 익명의 그늘에 숨었다. 갑남을녀인 국민들은 실명을 알고 싶어 했다. 그러나 상대가 대한민국 최고의 재벌이고, 산천을 떨게 하는 검사들인지라 언론을 비롯해 모두가 입을 닫았다. 이때 국민의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해 나선 이가 국회의원 노회찬이다.
노회찬은 그 해 9월, 국회에서 녹취록에서 떡값을 받은 것으로 지명된 전·현직 검사 7명의 실명을 공개하고 같은 내용을 자신의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하지만 12월 검찰은 관련사건 검사들을 무혐의 종결했고, 노회찬을 ‘명예훼손 및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기소했다. 이후 노회찬은 1심에서 징역 6월의 실형을, 2심에서는 무죄를 선고받은 후 어제 대법원에서 징역 4월에 집행유예 1년, 자격정지 1년의 최종 판결을 받았다. 결국 국회의원직을 상실한 것이다.
대법원은 “보도자료를 홈페이지에 게재함으로써 국회를 벗어나 모든 일반인이 볼 수 있도록 한 것은 면책특권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취지를 밝혔다.
여기서 우리는 ‘진실(眞實)’을 알고 싶어 하는 국민의 알권리와 법리적 사실(事實)의 충돌 사이에서 고민케 된다. 국민의 대의기관이자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이 국민의 알권리 충족을 위해 공인의 실명을 밝히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또 법과 양심만으로 판결한다는 법원이 개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법리적 사실에 입각한 판결을 나무랄 수도 없다.
또 대한민국 최고 법원인 대법원이 법리에 어두워 판결을 흐렸을리도 없다. 다만 대법원의 판결은 우리사회의 방향성을 갖는다는 측면에서 아쉬울 뿐이다. 대법원의 판결이 사회에 역동성을 불어넣고, 사회를 통합시키며, 국가가 지향해야 할 목표를 선명하게 제시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더욱 그렇다.
김진호 편집이사·인천편집경영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