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의회의 ‘삼성전자 불산 누출 진상규명 조사단’의 행보가 매우 실망스럽다. 조사단은 현장조사 단계에서 준비부족으로 코미디 같은 상황을 연출하더니, 급기야 진상을 밝히기보다는 제도개선에 초점을 맞추는 방향으로 선회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진상을 조사하지도 못 해놓고 제도개선을 논하는 것 자체가 비웃음을 자초하는 일이다. 진실이 드러나지 않았는데 어떻게 제도를 제대로 고칠 수 있나? 제도개선은 조사단의 일이 아니다. 조사단은 최선을 다해 불산 누출 사건 경위와 삼성의 유해화학물질 관리 실태, 이번 사고로 누출된 불산이 인근 주민과 환경에 미친 영향을 밝혀내면 된다.
조사단의 태도는 삼성의 직접적인 로비 의혹마저 살 수 있다. 직접적인 증거가 없으니 이런 의혹이 사실이라고 하기 어렵겠으나 조사단이 아리송한 태도로 나올수록 의혹은 증폭되게 마련이다. 설령 직접 로비를 받은 일은 없다고 하더라도 이처럼 진상을 밝히는 일에 미온적으로 나온다면 조사단이 ‘삼성의 힘’에 지레 겁을 먹고 알아서 기었다는 비난이 쏟아질 수밖에 없다. 도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온 힘을 쏟아야 할 도민의 대표들이 이 모양이니 도민들이 불쌍하다.
조사단으로서는 여러 가지 이유를 댈 수도 있다. 도 집행부가 조사단 구성에조차 참여하지 않았고, 전문적인 조사를 담당할 인력과 기술이 부족했으며, 자칫하면 삼성과 실익도 없는 지루한 소송 공방에 휘말리게 된다는 점 등을 제시할지 모르겠다. 인명을 앗아간 데다 인근 주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는 사안에 대해 도 집행부가 손을 놓았다는 사실은 어떤 명분으로도 합리화할 수 없다. 그러나 도의회의 입장에서는 바로 그렇기 때문에 조사단의 역할은 더욱 중요한 것이다. 도의 책임을 엄중히 추궁하는 일이 도의회의 첫째 임무 아닌가. 인력과 기술 타령은 핑계거리도 되지 않는다. 시민사회의 민간대책위가 훨씬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진실규명에 노력하고 있는 모습과 너무나 뚜렷이 대비된다. 해보지도 않은 소송을 벌써 걱정하면서 방패막이로 삼는다는 것은 비겁하다.
조사단은 처음부터 의지가 없었던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준비도 없이 현장조사에 나가고, 채취한 시료조차 오염 시비가 일자마자 즉각 폐기했다. 삼성을 고발하겠다고 기세를 올리더니 닷새 만에 철회하고 말았다. 반면 민간대책위는 고발 절차에 들어갔다. 조사위는 또한 도의 책임을 묻겠다던 입장도 슬그머니 바꾸었다. 그러나 아직 늦지 않았다. 조사기간이 보름가량 남았다. 도의회는 필요하다면 조사위를 서둘러 재구성하는 방안을 검토해 보아야 한다. ‘삼성의 힘’에 무릎 꿇었다는 수치스러운 불명예를 벗으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