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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행궁이 복원됐다. 화성행궁은 말그대로 화성에 있는 행궁(行宮)이다. 행궁은 임금이 궁궐을 떠나 역대 선왕들의 능원(陵園)을 참배하거나 요양을 위해 휴양지를 찾아 갔을 때, 전란으로 말미암아 피신할 때 쓰여진 임시 거처를 말한다.
화성행궁은 1789년에 착공, 1790에 완공됐었다. 당시 칸수는 340칸으로 조선 최대의 행궁이었다. 그러나 1910년 조선을 강점한 일제는 ‘조선읍성철거시행령’을 발동해 전국의 300여곳의 읍성을 철거하고, 뒤이어 궁성을 철거했는데 이때 화성행궁도 서울의 경복궁과 함께 뜯겨나갔다. 일제의 궁성파괴는 조선의 민족정기를 말살하기 위함이었다.
이제 그 화성행궁이 1790년 최초로 세워진 때부터 따지면 213년, 일제에 의해 파괴된 때로부터 따지면 87년만에 수모의 역사를 뛰어넘어 복원되었으니 장엄한 부활이 아닐 수 없다.
화성 행궁의 복원은 단순히 말살당했던 문화유산을 재현시켰다는 재건의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작게는 조선시대 내내 서울의 변방으로 인식된 수모에서 탈피해 수원과 수원시민의 자존심을 회복하고자 하는 열망의 표출로 볼 수 있다. 크게 보면 실종된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고, 분단조국의 통일에 대비하는 정신적 기반으로 삼을 수도 있다.
우리는 수원시가 화성행궁을 복원하기 위해 난관을 겪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1990년부터 전개된 복원공사 일정이 이를 증명한다. 1990년 12월 22일 수원의료원 이전, 1993년 12월 30일 수원의료원 건물 철거, 1995년 4월 24일 경기도기념물 제65호 지정, 1996년 2월 화성행궁지 1차 발굴조사, 1996년 7월 18일 복원 기공식, 2003년 7월 공사 완료까지 325억원의 예산을 들여 13년만에 482칸의 장엄한 행궁을 재현시켰으니 어려운 길을 걸어 온 셈이다.
그러나 화성행궁 복원은 아직 완성된 것이 아니다. 2010년까지 300억원이 소요되는 2단계 사업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총공사비 625억원. 인구 1백만의 수원이라고는하지만 단일 문화재 복원에 쓰여지는 돈치고는 만만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수원시민은 역사와 함께하는 문화재를 되찾는데 인색하지 않았다. ‘실학사상’의 발상지, ‘효사상’의 근원지로 거듭나는 수원시에 찬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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