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칩을 보낸 봄이 빠르다. 둠벙 안엔 벌써 올챙이가 보이고 들녘은 봄을 깨우는 소리로 부산하다. 과수원에 두엄을 내고 밭둑에 들불을 놓는 손길이 이젠 농경이 시작되었음을 알린다. 지난가을 파종한 마늘도 가까워진 태양의 거리만큼 싹을 틔웠고 냉이며 봄나물들이 제법 푸릇하다.
모처럼 짬을 내어 집안 구석구석을 청소하는데 초인종이 울린다. 낮엔 늘 집이 비어있는 터라 기척을 낼까 말까 망설이다 누구냐고 물으니 택배란다. 더구나 택배는 가게에서 받기 때문에 집으로 올 것도 없어서 망설이다 문을 열어보니 해남에서 온 싱싱한 봄나물이 가득하다. 남쪽에서 챙겨 보낸 봄을 보면서 친구에 대한 고마움과 반가움이 컸지만 택배기사에 대한 미안함이 앞섰다. 물론 감사하다는 인사는 했지만 망설였던 내 마음을 들킨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택배기사는 얼마나 마음이 언짢을까 하는 이런저런 생각들로 복잡하다. 사람이 사람을 믿지 못하는 세상이 되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어릴 적엔 대문을 열어놓고 살았고, 집이 빌 때도 대문을 잠그지는 않았다. 대문을 반쪽 닫아놓으면 빈집이구나 하고 이웃사람들이 살펴주었는데 지금은 모르는 사람이 방문하면 겁부터 난다.
늦은 밤 승강기 앞에 낯선 사람이 있으면 승강기를 타는 것이 불편해서 계단을 이용하기도 하고, 딴청을 부리다 다음 승강기를 이용하기도 한다. 물론 도처에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두려움부터 앞서는 것을 보면 세상이 그만큼 삭막하고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한다는 증거이다.
이웃에 누가 사는 줄도 모르고 이사 가면 가나보다 또 사다리차를 대놓고 짐을 올리면 그 집에 또 다른 누가 이사를 오나보다 하면서 강 건너 불 보듯 한다. 이사를 오면 떡을 해서 이웃과 나누고 서로 덕담을 주고받으며 인사를 하는 것도 이젠 옛말인가 보다.
얼마 전 아파트 현관 입구에 주차한 승용차 지붕에 구멍이 뚫리는 사고가 생겼다. 위층에서 비타 음료 병을 떨어뜨려 차가 파손된 것이다. 차량 파손의 크기로 보아 10층이나 11층에서 던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경찰관이 음료 병을 수거했고 피해자가 원하면 지문검식을 통해 범인이 밝혀질 거라고 했다. 많이 망설였다. 범인이야 곧 잡히고 피해보상도 받겠지만 한 통로에 살면서 마주칠 때마다 얼마나 불편할까 혹시 아이의 장난이 아니고 어른의 소행이라면 어떻게 수습해야 하나 하는 고민에 쉽사리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가족들과 의논한 끝에 차량은 보험처리하고 그 일은 없었던 걸로 하기로 했다. 한편으로 마음이 가볍고, 한편으론 바보가 된 기분이기도 했지만 사람 다치지 않은 것만 해도 천만다행이다 위안을 삼으니 서로 마주칠 때마다 불편한 것보다는 그 편이 나았다. 만약 사람이 맞았으면 대형사고가 될 뻔한 아찔한 일이다.
이 모두가 소통부재에서 생기는 일이다. 뜻밖의 택배를 받으며 난 얼마나 세상을 불신하고 사는가 하는 불편한 진실을 깨닫게 되었다. 겨우내 얼었던 대지도 봄이 오면 새 생명을 밀어 올려 꽃을 피우고 잎을 꺼내 또 다른 계절을 준비하듯, 움츠렸던 생각을 열어 나와 내 주변이 행복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봄이 되어야겠다고 마음먹어 본다.
▲한국문인협회 회원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안견문학상 대상(시) ▲시집-푸른 상처들의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