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성남시에 둥지를 틀고 있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거대 공기업이다. 언론이 빚 많은 공기업을 거론할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손님이다. 하긴 지난 연말기준 부채규모가 138조1천억원으로 국가부채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으니 당연해 보인다. LH는 “우리는 공공기관이라는 성격 때문에 손해나는 사업도 수행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라며 억울해 한다.
2009년 한국토지공사와 대한주택공사의 통합으로 탄생한 LH는 통합과정에서 토공과 주공이 밥그릇 챙기기 싸움을 벌이는가 하면, 상대방 흠집 내기로 국민들의 눈총을 받았다. 몸집은 공룡인데 부실해서 움직임이 둔하고, 내부 소화불량까지 걸린 LH를 그나마 다진 것은 초대 통합사장으로 취임한 이지송이다. 이지송 사장은 국내 대표적 건설사인 현대건설 사장을 역임하며 쌓은 업적과 학문적 배경까지 그 능력을 인정받아 취임했다. 업계에서는 그를 ‘건설사업의 귀재’ 혹은 ‘돌부처’라고 부른다.
한 번은 이지송 사장이 정부 관련부처에 호출 당했다. 장관 앞에 앉은 이 사장은 말이 없었다. 장관은 정부의 의지를 강조하며 특정사업의 진행을 요구했지만, ‘돌부처’는 멀뚱멀뚱 쳐다만 본 채 빈 찻잔만 만지작거렸다. 아무리 정부의 의지라고 하지만 착공하면 적자가 불 보듯 훤한 사업을 하지 않으려는 행동이었다. 또 “적자를 줄이라”고 다그치면서도 손해나는 사업을 추진하라는 정부에 대한 무언의 항의였다. LH 관계자들은 “빚이 많아 빛을 보지 못하지만, 이지송 사장은 뚝심으로 조직을 지키려 애썼다”고 평가한다.
이지송 사장이 사의를 표명했다. 새 정부의 공기업 인사에 걸림돌이 되지 않겠다는 표현이다. 사실 지난해 임기가 종료된 이 사장은 학교로 돌아가고자 했다. 그러나 정치권과 정부, LH 모두가 그의 임기연장을 바랐다. 언론에 보도는 되지 않았지만 이 사장이 중병을 치료하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을 모르는 관계자들은 없었지만 정권교체기의 안정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렇다고 연장된 임기를 대충 때운 것도 아니다. 지난해 연말 송년회 때는 아픈 몸을 이끌고 참석자들에게 일일이 술잔을 권하며 앞날을 기약했다. 민원인을 피하지 않고, 찾아다닌 것도 기억되는 부분이다.
뒤뚱뒤뚱 걷고 있는 공룡을 멸종의 위기에서 건질 다음 사장이 궁금하다.
김진호 편집이사·인천편집경영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