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06 (금)

  • 구름많음동두천 0.5℃
  • 맑음강릉 3.5℃
  • 박무서울 1.7℃
  • 박무대전 0.4℃
  • 구름많음대구 4.6℃
  • 흐림울산 7.0℃
  • 구름많음광주 2.3℃
  • 흐림부산 7.7℃
  • 맑음고창 -0.1℃
  • 흐림제주 6.9℃
  • 흐림강화 1.0℃
  • 흐림보은 1.5℃
  • 맑음금산 0.4℃
  • 흐림강진군 3.6℃
  • 흐림경주시 5.6℃
  • 흐림거제 7.6℃
기상청 제공
부모가 죽고나면 남는 것은 두가지다. 하나는 물질에 불과한 시신이고, 다른 하나는 유산(遺産)이다. 유산 분배는 유언으로 대신하거나 유서로 명시하는 것이 관례다. 잘났거나 못났거나 시신은 예외가 없지만 유산은 천차만별이다. 재력가는 엄청난 유산을 남기지만 가진 것 없이 살아온 가난뱅이는 유산은 커녕 빚이나 남기지 않으면 다행이다.
유서의 압권으론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것을 친다. 그는 1801년(순조1년)에 천주교 박해를 위한 신유사옥(辛酉邪獄)이 일어나자. 이가환(李家煥), 권철신(權哲身), 이승훈(李承薰), 최필공(崔弼恭), 홍교만(洪敎萬), 홍낙민(洪樂敏), 최창현(崔昌顯), 그의 맡형인 정약종(丁若鍾), 작은 형 정약전(丁若銓) 등과 함께 체포돼 형 약종은 장사(杖死)하고, 약전은 흑산도로, 약용은 당진으로 귀양갔다.
다산은 이곳에서 19년 동안 귀양살이 끝에 1818년(순조18년) 풀려나 승지(承旨)가 되었으나 배교(背敎)한 것을 뉘우치고 낙향하여 저술에 몰두하다 세상을 떴다.
그가 귀양살이를 하고 있을 때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는 단순한 편지가 아니라 유언이었다. “내가 벼슬살이를 하지 못해 너희들에게 남겨 줄만한 밭뙈기 하나없는 것을 미안스레 여긴다. 하나 너희들에게 앞으로 가난을 벗어나서 잘 살 수 있도록 두 글자를 일러 줄터인 즉 이를 부적처럼 마음에 꼭 지니고 있거라.”
내용인 즉 이러했다. “한 글자는 부지런할 근(勤)이고, 다른 한 글자는 검소할 검(儉)자다. 이 두 글자는 좋은 밭이나 기름진 땅보다도 나으며 일생동안 쓰고도 다 쓰지 못하느니라. 부지런한 근이란 오늘 할일을 내일 미루지 말며 아침에 할 수 있는 일을 저녁까지 미루지 말 것이며, 맑은 날에 해야할 일을 비오는 날까지 끌지말도록 하여라.” 유서라기 보다는 명언이다.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