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엔 중심에 서있는 사람과 비켜서있는 사람이 있다. 중심에 서있으면서도 비켜서있는 사람과 같은 자세와 관점을 가지고 자신을 겸손히 낮추는 사람이 있다. 반면에 비켜서있으면서도 중심에 서있는 것처럼 착각하며 그런 언행으로 주변을 혼란스럽게 하는 사람도 있다. 진심으로 비켜서있는 사람이 중심에 서있는 사람으로부터 한없이 질타와 멸시를 받을 때 그 쓸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중심에 서있는 사람의 오만불손한 태도에 그만 인내의 한계를 느끼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렇다고 그에게 딱히 대항하거나 견줄만한 힘은 없다. 그래서 한없이 무기력해지며 비애를 느낀다.
물론 중심에 서있는 사람은 자신의 실력과 능력으로 그 위치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잘못은 아니다. 왜냐하면 생각은 자유롭기 때문이다. 그 자유는 태어날 때부터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천부인권(天賦人權)이다. 그렇다면 생각의 기준이 있음을 상기하고, 고귀한 관점을 가질 필요가 절대적으로 있다. 자신이 중심에 서있기까지는 비켜서있던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런 사람들이 없었다면 그리 쉽게 그 자리에 앉아 있을 수는 없다. 그러므로 중심에 서있는 사람은 겸양지덕(謙讓之德)을 소양으로 갖춰야 한다.
그러나 심각한 것은 비켜서있는 사람이 자신을 중심에 있는 존재로 착각하며 우리의 상황을 혼란에 빠뜨리는 경우다. 이것은 커다란 해악이다. 자신은 전면에 나서지도 못하면서 뒤에서 그림자로 웅크리고 앉아 조종한다. 이런 위선과 이중성에서 진실은 진흙구덩이에 내동댕이쳐지고, 절대 무너질 수 없는 진리도 그에 의해 무너진다. 물론 진리는 진리이므로 다시 햇빛을 보게 되어 있지만 그들에 의해 잠시나마 가려진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그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탐욕이다. 작건 크건 사회가 있는 곳에 혼란이 있다면 그것은 분명히 진리를 왜곡시켜 혼란을 부추겨 반사이익을 챙기고자 하는 탐심(貪心)에서 비롯함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진심으로 비켜서있는 사람들의 면면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바로 이웃과 타인을 배려함이 아닌가?
관용을 바탕으로 한 사랑하는 마음이다. 비록 전자와 후자에 해당하는 사람들로부터 상처를 받았을지라도 그들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그들에 대하여 인내하는 태도와 관점은 거의 진리에 가깝다고 할 것이다. 이렇게 이 사회의 주역들에게 비켜서주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예의염치가 있는 겸손한 사람이야말로 비록 비켜서있을지라도 진실로 중심에 서있는 사람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겠다. 그러한 사람들 때문에 우리 사회 곳곳은 어두울지라도 결코 어둡지 않을 것이다. 대낮인데 구름이 낀 하늘이라고 해서 태양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 않은가? 진리를 왜곡시키고 스스로 훼절의 대열에 선 사람일지라도 진심으로 비켜서있는 사람들을 쓸쓸하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사회는 더불어 살아야 하므로 중심에 앉은 리더는 낮은 자세로 널리 살펴야 할 것이다. 그런 사회를 동경하며 오늘도 소망을 가지고 내게 주어진 길을 간다.
▲고려대 교육대학원 국어교육학과 ▲경기예총 2012년 빛낸 예술인상 수상 ▲한광여중 국어교사 ▲전 (사)한국문인협회 평택지부 지부장 ▲시집-『카프카의 슬픔』(시문학사·1992년)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