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지역(고구려 벽화)은 여성의 지위가 그다지 낮지 않았음을 보여주는데 비해 평양지역은 (여성의 지위가) 벽화가 그려진 초기부터 현저히 낮았다"
강영경 숙명여대 교수는 22-24일 세종문화회관에서 고구려연구회(회장 서길수) 가 주최하는 '고구려 벽화'를 주제로 한 국제학술대회에서 발표할 '벽화를 통해서 본 고구려 여성의 역할과 지위'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강교수는 「북한의 문화재와 문화유적」 1,2편을 기본 자료로 한 논문에서 "대상 비중의 법칙에 따라 부부도(夫婦圖)속에서 남녀의 크기를 상대적으로 비교"하면 같은 고구려 시대에도 평양과 집안지역에서 그 크기와 위치에 차이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집안지역에서는 5세기 중엽의 삼실총에는 제1실 동벽에 부부가 같은 크기로 그려져 있다"며 "실제로 여성이 남성보다 평균적으로 키가 작은 것을 감안한다면 여성이 실제보다 더 크게 그려진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5세기 중엽의 장천 1호분 벽화나 연화 화생도에도 남녀가 같은 크기로 그려졌다"며 "관대도 크기가 같은 1인용 관대가 2개 나란히 설치돼 남녀의 차별이 없는 대등한 지위를 보여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반면 "평양지역에서는 4세기 중반의 안악3호분에 등장하는 부부는 각기 다른 벽면.장방에 앉아있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며 모습도 "남주인공은 정면상이며 크기도 크고 여주인공은 주인쪽을 향하여 무릎을 꿇은 채 작게 그려져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4세기 중반에 이미 남녀가 유별하며 남존여비와 여필종부적인 유교 관념이 벽화에 반영돼 있는 것"이라는 해석.
그는 "5세기 후반의 수렵총에서도 남주인의 좌편에 여주인이 작게 그려져 있고 수산리 고분에서는 남주인공의 뒤에 조금 작게 아들이 그려지고 그 뒤에 조금 더 작게 여주인이 그려져 있다"며 "이는 대상 비중의 법칙으로 볼 때, 5세기 후반의 평양지역에서는 부(父)와 자(子)보다도 낮은 지위로 여성이 그려져 있는 것을 보여준다"고 평했다.
그는 "집안지역에서는 남녀의 지위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은 반면 평양지역에서는 4세기 경부터 각 방에 따로, 또 남성을 향해 무릎 꿇은 낮은 지위로 여성이 그려져 있다"며 그 위치도 남성의 좌측에서 "5세기 후반에는 우측에 위치하는 것으로 변화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것이 "평양지역이 일찍부터 접했던 유교 문화적인 관념을 반영"한다며 "427년에 단행된 장수왕의 평양 천도 역시 유교적인 위계 질서와 권위적인 분위기를 보여주는 평양지역이 왕권을 강화시키기에 더 유리한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으로 추론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