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째 집에만 갇혀 살다보니 언제 움이 트고 꽃이 피는지 잘 모르고 지나치고 만다. 긴 겨울이 지루하고 실증이 나 자연 봄을 기다리게 되면서 혹시 새싹이 돋지 않았나 하는 마음에 아직 얼음도 풀리지 않은 땅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지는 않나 해서 괜스레 먼 길을 바라보노라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누굴 기다리느냐고 묻기도 한다. 때 이른 기다림에 마음을 빼앗기고 정작 봄이 오면 남들로부터 꽃소식을 듣기 일쑤다.
더욱이 올해는 어수선한 봄을 보내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고장은 안타깝게도 군수가 임기를 다하지 못하고 물러나게 되어 재선거를 치르게 되었고, 후보자 중에는 현직 도의회 의원들도 중도 사임을 하고 선거에 뛰어 들어 선거판을 키웠다.
자기 후보를 나타내는 옷을 입고 인사를 하고 다니는 것은 물론 마을회관을 방문하기도 하고 행사장을 쫓아다니는 것은 물론이요, 영업 중인 상가에 찾아와 한 표를 호소했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지만 날이 가고 회를 더 하면서 주민들은 불편해 했고, 바쁠 때는 여론조사 전화 때문에 짜증이 난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불경기까지 선거 탓으로 돌리면서 몇몇 당선자를 위한 잔치는 끝이 났다.
날씨도 여느 봄날보다 심술이 심했다. 가뜩이나 환절기를 곱게 넘기지 못하고 감기치레를 하는 나에게 변덕스런 날씨는 기어이 나를 넘어뜨렸다. 앓아누워서도 비만 그치면 봄꽃 다 지지 않았느냐고 보채는 통에 조금 회복하면서 꽃구경을 나섰다.
빗방울이 떨어지기는 했지만 차창 밖으로 보이는 산과 들은 한 점의 수채화였다. 북한강을 끼고 이어지는 길에 늘어선 벚꽃을 바라보며 탄성이 절로 나왔다. 커브를 돌 때마다 꽃잎마다 빗방울을 머금은 예쁘고도 안쓰러운 풍경에 손뼉을 치며 어린 아이처럼 좋아하면서
“참 고맙다. 아직까지 기다려 준 꽃들이.”
“참 고맙다. 꽃구경 시켜주는 사람이.”
“참 고맙다. 꽃만 보면 행복한 사람이.”
모든 게 다 좋게만 보였다. 넓은 창으로 꽃비가 나부끼는 집에서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길은 천둥 번개에 우박까지 뿌리는 날씨였지만 감기몸살쯤은 잊게 했다.
모처럼 맑은 하늘엔 햇솜 같은 구름이 지나고 지붕을 넘어 온 이웃집 목련꽃이 마당에 흩어져있다. 다급한 마음에 흠뻑 젖은 밭에 빠지며 목련나무 밑으로 갔다. 흩어진 꽃잎은 거의 벌레가 먹은 것처럼 뚫려 있었다. 아직 매달린 꽃송이도 멀리서 볼 때와는 다르게 검은 얼룩과 구멍을 지니고 있었다.
이렇게 많은 상처를 지니고도 한결같이 웃고 있었다니 새삼 울컥해진다. 누구나 작은 상처 하나쯤은 지니고 산다지만 꽃으로 살다가기 위해 이렇게나 많은 아픔과 상처를 감추고 있을 줄은 몰랐다. 한 해를 기다려 열흘도 못 사는 생이 눈물겹도록 아름다워 하물며 떨어진 꽃도 차마 밟힐까 안타깝다.
선거가 끝나면 언제나 뒷말이 나오지만 지방선거에는 후유증이 더 크다. 승리 앞에서 웃는 4·24 재선거의 당선자들도 그동안 기꺼이 고개를 숙였던 모습처럼 유권자들을 위해 아픔을 참아내는 꽃의 의연함을 본받을 때 비로소 사람도 꽃처럼 아름답다 하지 않을까.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 작가 신인상 수상 ▲가평 문학상 수상 ▲가평문인협회 이사 ▲플로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