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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일본군의 중국인 살육 ‘삼광(三光)작전’

 

흔히 2차 대전 당시 일본군의 반인륜적 만행으로 1937년 12월의 난징대학살을 말한다. 보통 30만 명이 살해되었다고 알려졌음에도 난징대학살은 없었다고 주장하는 가와무라 다카시 나고야(名古屋) 시장의 망언이 공분을 사고 있는데, 일본의 양심적인 역사학자 히메타 미쓰요시(姬田光義)가 쓴 『三光作戰とは何たったか-中國人の見た日本の戰爭』을 보면 일본군의 초토화 작전으로 270만 명 이상의 중국 민간인이 살해되었다고 한다.

이를 중국에서는 삼광정책이라 말하고, 일본식 표현으로는 삼광작전이다. 삼광작전은 ‘모두 죽이고( 光), 빼앗고( 光), 불태우는( 光)’ 작전으로 게릴라전을 펴는 중국 공산군, 특히 팔로군 배후 촌락을 철저히 파괴하는 것이었다.

이미 대장정을 통하여 사기가 드높은 팔로군은 철저한 군기 이행으로 민심을 얻어 1939년부터 1940년 사이에 산악지대에 근거지를 마련하고 수백만의 백성을 지배하에 두었다.

토지개혁을 실시하여 해방군이란 칭호를 얻기도 하였다. 국민당군과 싸우면서 한편으로는 일본군을 상대로 게릴라작전을 전개하여 일본군을 괴롭혔다.

1940년 8월 팔로군은 ‘백단대전(百團大戰)’이라는 이름으로 일본군에게 치명타를 입혔다. 화북 전 지역에 걸쳐 일본의 철도, 교량, 탄광, 방위시설, 통신시설 등을 공격하였다. 특히 허베이성과 산둥성 동부에서는 일본군의 물질적, 인명 피해가 컸다.

히로히토 일왕은 1941년 12월 3일, “적에 대해 봉쇄를 강화하고 적의 전의를 파괴하고 쇠망시키라”는 대륙명 575호를 승인하였다. 이 작전에 의거 오카무라 야스지(岡村 寧次) 지나 파견군 총사령관은 일본군이 지배하는 치안지구, 준치안지구, 일본군이 지배하지 못하는 미치안지구로 나누었다. 미치안지구는 사람이 살지 못하도록 하고, 준치안지구에서 넘어가지 못하게 참호로 막아놓았다.

이 섬멸작전으로 마을을 불 지르고 식량을 약탈하며 농민들을 집단으로 이주시키는 일이 계속되었다. 너비 6m, 깊이 4m에 이르는 거대한 차단호를 파도록 하고 망루와 도로, 전화선을 설치하였다. 중국 농민 수백만 명을 동원하여 한 번에 두 달씩 이 작업을 진행하였다.

문제는 팔로군의 신출귀몰하는 게릴라작전에 이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었다. 팔로군은 언제든 일본군이 떠나면 무인지대가 된 곳으로 돌아와 이곳을 지배하고 농민들을 보살폈다. 원래 삼광작전은 적과 지역주민을 가장한 적, 적의 성격이 있다고 판단되는 주민 중 15세에서 60세까지의 남자를 살육하는 것을 목표로 했었다. 그러나 무고한 중국 농민들만 죽인 결과만 낳았다.

삼광작전은 1990년대 들어서 비교적 양심적인 학자들에 의해 연구가 진행되었다. 언젠가는 난징대학살과 비교할 수 없는 파괴적이고 장기간에 걸친 만행이었음이 만천하에 드러날 것이다. 독일의 유대인 학살에 결코 뒤지지 않는 홀로코스트에 다름 아니다.

그럼에도 은폐와 왜곡에 급급한 일본, ‘천인공노’라는 말은 이런 데에 쓰는 말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