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열정이 인간성을 전복하는 사회, 기업이 국가를 움직이는 시대다. 인생의 최대 목표는 취업이 되었고, 구직자들은 기업의 모집전형에 몸을 구겨 넣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상경 분야를 전공하지 않으면 기업 취업에 불리하다는 것은 오래된 불문율이다. 늦깎이로 상경계 전과를 감행하거나 복수전공을 하는 경우가 태반이고, 인문학 전공자는 자신의 이력에 하자가 있음을 느낀다. 대학도 마찬가지다. 취업률을 보장하지 못하는 학과는 구조조정의 대상이 된다.
최근 배재대학교가 국문학과와 외국어로서의 한국어학과(외한과)의 통폐합을 결정했고, 이에 재학생들과 여론의 항의가 빗발치고 있다. 민족시인 김소월·국어학자 주시경 배출을 내세우던 학교가 스스로 정체성을 폐기했다는 비판이다. 대학 측은 취업 경쟁력 강화를 고려한 결정이었다고 밝혔다. 건양대와 서원대는 수년 전 이미 국문과를 폐지해 통폐합했고, 광운대는 폐지 논란이 불거진 끝에 간신히 국문과 유지 결정이 났다.
인문학의 지향점은 활용 아닌 ‘사유’
단순히 ‘취업률 1위 대학’의 타이틀을 얻기 위한 대학의 기업화는 아니다. 아래로부터의 선호도 감소보다는 위로부터의 구조조정 압박이 더 강했다. 지난해 교육부는 총 337개 대학 중 43개 대학을 정부 재정지원 제한 대학으로 지정했고, 이중 13개 대학에 대해서는 학자금대출을 제한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2011년부터 발표된 재정지원 제한 대학은 취업률, 재학생 충원율, 전임교원 확보율, 교육비 환원율, 등록금 부담완화, 장학금 지급률 등 10가지 지표를 토대로 선정되는데, 이 중 취업률의 비중은 평가지표 중 두 번째로 비중이 큰 20%에 달한다. 청년실업이라는 사회문제의 책임을 대학에게로 떠넘긴 셈이다. 대학들은 살생부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뼈를 깎는 각과(刻科)의 노력을 해야만 했다. 배재대도 재정지원 제한 대학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정부가 취업률로 대학을 줄세우기 한다는 비판이 일자, 교육부는 올해부터 4년제 대학 평가지표 중 취업률(20%)과 재학생 충원율(30%)의 비중을 5%포인트씩 낮추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미 정부 공인 ‘부실 대학’들은 총장실에 모니터를 설치해 실시간으로 자대 취업률을 체크하고, 학내 ‘위기관리위원회’, ‘미래전략위원회’를 신설하는 등 ‘비대위’ 체제에 돌입했다. 교수들은 상상이상의 압박을 받으며 취업브로커로 전락하고 있다.
한편 역설적이게도 최근 거세진 인문학 열풍이 빌딩숲까지 불어 닥쳤다. 삼성은 ‘인문학+기술 결합형 인재’를 선발한다는 계획을 발표했고, 국민은행도 채용과정에서 인문학분야 베스트셀러 28권을 활용한 심층면접을 진행한 바 있다. 이에 인문학 강좌 수강을 원하는 취업준비생들의 문의도 급증하고 있다. 인문학적 소양이 인생을 살아가는 나침반이라는 측면에서 바람직한 현상이다. 그렇다면 이제 대학이 부랴부랴 인문학을 활용한 취업코스를 마련하면 되는가. 틀렸다. 인문학의 지향점은 활용이 아닌 사유에 있으며 그 깊이는 숫자로 채울 수 없다.
미래의 인재상은 기업이 아닌 대학이 제시해야 한다. 대학이 나서서 기초학문의 중요성을 주장하고 고등교육기관으로서의 자존심을 지켜야 한다. 기업이 구직자를 간택하고 정부가 일차원적인 정책으로 호응하는 한, 교육기관으로서의 대학의 미래는 어둡다.
미래 인재상, 대학이 제시해야 한다
정부는 더 이상 대학을 압박해선 안 된다. 고용 문제의 본질은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옮겨가는 구조적 변화와 서비스업 직종간의 질적인 차이에 있다. 정부는 이미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완벽에 가까운 스펙을 갖춰가는 청년들에게 눈마저 낮추라 강요하지 말고, 노동권 보장, 복지를 강화를 통해 다닐 만한 일자리를 늘리는 데 집중해야 한다.
그 답은 다시 경제민주화, ‘을(乙)’을 위한 연대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