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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란트 前총리 아들, 간첩 기욤사건 드라마 주연

빌리 브란트 전(前) 독일 총리의 아들로 연극배우인 마티아스(52)가 2차대전 후 독일 사회 최대의 스캔들인 `귀욤사건'을 다룬 TV 드라마에서 자신의 아버지에게 시련을 안겨 준 간첩 귀욤 역을 맡았다.
독일과 프랑스의 합작 공영 TV방송 아르테(ARTE)는 23일부터 이틀간 `권력의 그늘에서'라는 제목으로 브란트 총리의 사임을 전후한 독일 내의 정치적 갈등과 권력투쟁을 그린 정치 드라마를 방영한다.
독일 제1공영 ARD방송도 29일부터 주 시청시간에 방영할 이 영화의 핵심 소재는 `간첩 귄터 귀욤 사건'이다.
지난 1974년 4월 서독의 대방첩기구인 헌법수호청은 브란트 총리의 개인비서인 귀욤이 동독 비밀정보부 슈타지의 밀명을 받고 1956년부터 18년 동안이나 부인과 함께 서독에서 암약해왔던 동독의 간첩이라고 발표했다.
서독인들은 동독 간첩이 1969년부터 총리실에 근무하고, 1972년부터는 총리의 개인비서로 활동하며 비밀을 동독측에 넘기고 총리의 여성 편력을 유도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이 사건으로 서독 내의 이념적 갈등과 총리직을 둘러싼 권력 투쟁이 불거졌으며, 동독과의 화해와 공존을 추구한 동방정책으로 노벨평화상까지 받았던 브란트 총리가 결국 사임했다.
당시 열두 살이었던 브란트 총리의 아들 마티아스는 아버지를 파멸로 몰아넣었던 귀욤 역을 맡게 된 것에 대해 "배우로서 정치인 빌리 브란트는 물론 귀욤에 대해 큰 흥미를 갖고 있었으며 그 역할을 맡고 싶었다"고 말했다.
마티아스는 "사람들은 귀욤에 대해 이름과 사진 한 장 외에 아는 것이 없으면서도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처럼 말한다"면서 "선친과 동독에 이중으로 충성하고 아버지를 파멸시킨 인물의 내면을 만나는 것은 매우 가치있고 흥미롭다"고 밝혔다.
기욤은 13년 형을, 부인은 8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중 1981년 건강악화로 동독에 송환된 뒤 슈타지에서 간첩교육을 하고 명예 법학박사 학위를 받기도 했다.
그는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기 한 해 전인 1988년에 `증언'이라는 자서전을 발간했으며, 1995년 4월 베를린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기욤은 자서전에서, 비록 동독 간첩이기는 했으나 브란트 전 총리를 진심으로 존경했으며 사건 폭로 이후 브란트 전 총리를 최대한 보호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아무 도움을 주지 못했다고 술회한 바 있다. .
독일 통일의 아버지로 불리는 브란트 전 총리는 히틀러의 나치와 스탈린의 공산독재에 항거한 투사로서 2차대전 후 망명에서 돌아와 사회민주당을 이끌었으며, 1969년 서독 총리가 됐다.
총리 취임 이후 그는 동독과의 화해와 공존을 추구하는 동방정책을 추진하고, 1970년 폴란드 바르샤바 유대인 학살 추모비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사과하고 서독 총리로서는 처음으로 이스라엘을 방문하기도 했다.
처음에 야당과 우파에 의해 공격받았던 동방정책은 이후 여러 차례 여.야간 정권 교체에도 불구하고 독일의 기본적 대동독 정책으로 자리잡았다.
동서독 통일 후인 1992년 사망한 빌리 브란트는 기욤 사건에도 불구하고 전후 독일 정치사에서 가장 매력적이고 위대한 정치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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