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 대법원은 매년 1만건 이상 신청되는 상고심 중에서 100건 이하만 처리한다. 그리고 나머지는 우리나라의 고등법원에 해당하는 미국 연방항소법원이 처리하고 있다.
때문에 연방항소법원은 연방법원의 2심법원이면서도 대부분의 소송에서 사실상 최종심 역할을 한다. 따라서 그 권한과 파워가 막강하다.
미국 전역에는 이런 항소법원이 모두 13곳 있다. 그리고 179명의 판사가 종신직으로 재직 중이다.
각 항소법원마다 평균 13명의 판사가 있는 셈이다. 상원의 승인으로 미국 대통령이 임명하지만 종신직이라서 자부심 또한 대단하다. 특히 여느 압력에도 흔들리지 않는 소신 판결로 유명하다.
이런 연방항소법원도 무서워(?)하는 게 있다. 바로 국민이다. 그래서 연방항소법원은 10여년 전부터 국민 곁으로 「찾아가는 법정」을 운영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현장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혹시나 받을지도 모를 법에 대한 국민들의 불이익을 해소시켜 주기 위해서라고 한다. 사법부가 권위를 내던진 일종의 대국민 신뢰 프로세스인 것이다.
국민 곁으로 다가서는 연방항소법원의 이 같은 작은 배려로 인해 권위의 대명사처럼 여겨져 왔던 사법부가 신뢰와 존경의 상징으로 점차 그 모습이 바뀌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법원도 이 같은 제도가 있다. 그러나 지난해에야 처음 시행되는 등 아직은 활성화가 안 되어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인천지법(법원장 지대윤)이 오는 17일과 22일 서해 최북단 백령도와 자월도에서 「찾아가는 법정」을 연다. 모처럼 만에 쉽지 않은 결정이다.
요즘 판사들의 평소 업무량을 고려할 때 법원장까지 나서 현장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특히 백령도는 인천에서 뱃길로 3시간이 넘게 걸리고 하루에 여객선이 3차례만 다니는 낙도다. 이를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섬 주민들에게는 경제적 시간적 부담을 줄여주는 효과도 기대된다.
인천지법은 재판 이외에 주민과 학생을 대상으로 법(法)강의도 할 계획이다. 사법의 접근성을 향상시키는 데도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사법부에 대한 불신(不信)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기대가 크다는 반증이다. 인천지법의 이번과 같은 사고(思考)의 전환이 불신을 불식(拂拭)시키고 기대에 부응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정준성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