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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사의 중심에 있는 것이 청와대(靑瓦臺)이다. 청와대는 본시(자유당 정권 때) 경무대(景武臺)였다.
1960년 4.19혁명으로 이승만(李承晩)이 하야하고, 민주당 정권이 들어서면서 윤보선 (尹潽善)이 경무대의 새 주인이 됐다. 그러나 윤보선은 경무대라는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까닭인즉 경무대가 자유당 독재정권의 상징인데다 4.19혁명 때 경무대로 돌진하는 수 많은 학생들에게 총격을 가한 유혈의 현장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윤보선의 뜻에 따라 경무대의 이름이 바뀌게 되는데 이 때 ‘청와대’라는 새 이름을 지어 준 사람이 누구인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 주인공은 언론인 인제(忍濟) 김영상(金永上)이다.
김영상은 충남 아산 태생으로, 양정고보를 거쳐 1942년 일본 릿쿄(立敎)대학 영문과를 졸업하고, 이듬해 매일신보 사회부기자로 언론계에 투신하여 광복 후 서울신문 정치부장, 편집부국장, 논설위원을 거쳐 1954년 서울시장 김태선(金泰善)의 간청으로 서울시사편찬위원회 상임위원이 됐다. 바로 그해 한국일보 창간을 준비 중이던 장기영(張基榮)의 억지에 못이겨 시편위 상임위원과 한국일보 편집부국장을 겸직한다.
1960년 4.19혁명 직후인 6월 양직을 사임하고, 동아일보 편집국장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얼마 후 5.16쿠데타가 일어나자 김영상은 “혁명정부는 민간에 하루 속히 정권을 이양하라”는 기사를 1면에 실은 것이 문제가 돼 조용중(趙庸中), 이만섭(李萬燮) 등과 함께 군부에 끌려가기도 했다.
김영상은 ‘한국의 푸른 하늘과 경무대의 푸른색 기와 지붕’에 착안하여 청와대(靑瓦臺)로 이름 지운 것인데 윤보선이 크게 만족하여 1960년 12월 30일부터 청와대로 불리워지고 있는 것이다. 김영상은 2003년 7월 11일 향년 86세로 우리 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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