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증은 정신병이 아니다. 선천적 장애다. 자폐증 환자에게서 오히려 거짓 없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는 것은 더 감동적이다. 왜일까? 비장애인의 기준으로 볼 때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분명 자유롭지 않다.
그러나 성격은 참으로 올곧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그 사람으로 기준을 삼고 보면 그의 생각과 행동은 지극히 정상적이다. 결코 비정상적이지 않다. 정신적 연령이 유아적 상태에서 멈춘 것 같은데, 그를 비장애인처럼 생각해서 비교하고 꾸짖고 비난하면 졸장부란 소리를 듣기 딱 좋다. 자폐증 환자 이야기를 다룬 영화 <말아톤>은 그래서 감동적이다.
반면에 편견에 사로잡힌 증세를 가진 사람이 있다. 그는 지극히 정상적이다. 그러나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편견적이다. 자기 자신이 판단의 기준이요 잣대이기 때문이다. 보편적 관점에서 보면 상당히 부정적인 시각의 소유자라고 하겠다. 현상을 해석할 때 ‘아전인수’ 격으로 한다. 잘도 끌어댄다. 자기합리화를 잘 한다. 그러니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과연 참일까?
요즘 시대를 보면 대인들은 다 어디가고 졸장부들만 잘난 세상인가 보다. 감동을 주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마저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단지 어른부터 아이들까지 자신이 기준이 되어 세상을 보는 편견적 시각만 난무한다. ‘참’보다는 ‘거짓’이 많다. 거짓은 수식이 많고 잘도 꾸민다. 게다가 목소리까지 높아 싸움판에서는 이기고 봐야 한다는 결과중심주의적 사고가 만연되어 있다.
그렇기에 아전인수(我田引水)로 덮어쓰기를 잘 한다. 이 밝은 대낮에 태양이 부끄럽지 않은지 ‘네 탓’만이 있을 뿐이다. 고온다습한 이 무더운 여름날 한 모금 청량제와 같은 시원한 감동적인 이야기가 진정 우리 사회에는 없단 말인가?
최근 미국 부시 대통령이 삭발하고 등장한 뉴스를 보았다. 자신의 경호원 아들이 백혈병에 걸려 투병중이라 했다. 삭발한 이유는 그 아이와 같은 모습으로 격려를 주기 위함이었다고 했다. 노신사요 연로한 그 전직 대통령은 그렇게 주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때마침 우리나라에서는 전직 대통령 일가친척들이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검찰이 벌금을 환수하기 위해서 은닉재산을 조사 중에 있다.
이렇게 한국과 미국 두 전직 대통령이 뉴스에 등장하는데 왜 이리 대조적일까? 우리 대통령께 오히려 연민의 정이 아니 갈 수가 없다. 감동이 없어서이다. 노신사의 휴머니티가 보고 싶다. ‘사필귀정’은 하늘의 이치요 하늘의 법도다.
거짓은 죄악을 낳고 편견은 오만(傲慢)을 낳는다. 졸장부의 행태가 다 그렇지 않은가?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은 법인데, 어른들의 그런 모습에서 아이들도 자기합리화를 위해 참보다는 거짓이 편리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들의 내면에 죄악(罪惡)과 오만(傲慢)이 자라고 있는 것이다.
지금 국회에서 여야가 벌이는 정쟁은 당파 싸움으로 치달을 것이다. 본말이 전도된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알고 보면 이것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정도를 한참 벗어난 자기합리화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