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말복이다. 삼복이 모두 지나 무더위가 한 풀 꺾인다고 생각하니 이제 시원해지려나 하는 기대보다 아직도 습기가 마르지 않아 눅눅한 집안 같은 개운치 않은 느낌이다. 중부 내륙인 우리 고장에서는 삼복 내내 더위보다는 끈질긴 장마에 시달렸고, 장마가 끝났다는 보도 후에도 연일 소나기가 내린다. 무슨 영문인지 하루라도 비가 오지 않은 날은 없었고 그것도 한두 차례 지나가는 소나기가 아니라 하늘에 금이 가듯 요란한 벼락과 함께…. 이제 기록적인 장마가 제발 끝나기를 바라면서 달력을 보는데 내일이 또 비가 올 확률이 높은 날이다. 바로 칠월 칠석이 기다리고 있다.
칠석날도 이제는 아득한 옛날처럼 가물거린다. 예전 같으면 햇밀에 애호박 썰어 넣고 전을 부치고 시원한 샘물을 긷고 오이 덩굴을 뒤져 연한 오이를 골라 냉국을 먹었다. 할머니는 치아가 없어 주름이 자글자글 잡혀 오목해진 입술로 오물오물 옛날 얘기를 시작하신다.
“오늘 까마귀나 까치 한 마리도 못 봤지? 있다가 캄캄해지면 견우직녀가 만나거든. 그런데 하늘에도 장마가 져서 은하수가 깊어 건너갈 수가 없었단다. 너도 생각해 봐라. 얼마나 슬펐겠니? 일 년 내내 기다려서 보고 싶은 직녀가 건너편에 있는데 서로 쳐다보고 눈물만 흘리다 헤어지는데 하도 가엾어서 까마귀와 까치가 은하수에 다리를 놓아 오작교라는 다리위에서 만나는데 처음엔 너무 반가워서 울고 나중엔 또 헤어지는 게 슬퍼서 울고… 그래서 그 눈물이 땅으로 떨어져 비가 되는 거야.”
할머니의 옴팍한 입술에 시원한 냉국이 담긴 하얀 대접을 가져가신다.
“내일부터 까마귀나 까치를 보거든 머리를 잘 봐라. 머리가 다 벗겨져 있을 테니. 왜 그러냐 하면 조그만 새들이 아픈 것도 억지로 참고 견우직녀 일 년에 한 번 서로 만나라고 머리를 꼭 붙이고 다리를 놓아 주느라고 머리가 다 벗겨졌단다.”
저녁도 먹는 둥 마는 둥 빨리 밤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약속처럼 비가 내리고 칠흑 같은 하늘은 단 한 번도 나에게 그 장면을 보여주지 않았고 나는 그대로 나이를 먹으며 견우직녀도 오작교도 모두가 사실이 아님을 알고 말았다.
칠월 칠석이 비록 사실은 아니라 해도 사랑을 소재로 한 이야기가 아름다운 추억으로 자리 잡고 있다. 요즘처럼 조금만 서로 맞지 않으면 이해와 양보로 풀기보다는 쉽사리 돌아서는 쪽을 택하고 마는 세태에 남녀 간의 사랑에도 변치 않는 믿음과 약속의 중요성을 다시 짚어보게 된다.
그 외에도 곰곰 생각해 보면 철 따라 여러 가지 얘기가 있다. 삼복을 내리 풀만 먹으면 머릿속이 빈다고 끌려간 순둥이 독구와 정월대보름 전날의 야관귀 같은 이야기들이 알고 보면 사람으로서 지녀야할 덕목인 사랑과 나눔의 정신으로 집약된다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지금은 밸런타인데이나 로즈데이, 실버데이 같은 연인을 위한 날들이 일 년을 두고 정해져 있지만 이는 연인만을 위한 날이지 주변을 위한 배려는 보이지 않는다. 이미 퇴색되고 잊혀 가는 칠석날의 뜻을 되새기 위해서라도 내일은 호박전이라도 부쳐야 할까 싶다.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 작가 신인상 수상 ▲가평 문학상 수상 ▲가평문인협회 이사 ▲플로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