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열대야 현상이 지속되면서 올 여름엔 잠 설치는 날이 많아지고 있다. 이 무더운 여름에 발표된 정부의 세제 개편안은 많은 국민들을 더 덥게 만들고 있다. 연봉이 3천450만원 이상인 근로자 434만명, 전체 근로자의 28%만 세금 부담이 증가한다고 한다. 정부 설명에 따르면, 올바른 방향의 세제 개편인데 국민들은 왜 불만일까?
첫 번째, 자영업자에 대한 근로자들의 상대적 박탈감이다. 위와 같은 세금부담은 주로 봉급생활자들에게 해당하지, 자영업자들 대부분에게는 해당 없는 얘기다. 근로소득 공제를 줄이고, 교육비와 의료비 공제를 줄이는 등 각종 세제 개편의 파급효과는 소위 유리지갑이라고 불리는 봉급생활자들에게 집중된다. 자영업자들은 사업과 관련된 각종 경비로 과세대상 소득을 최대한 줄일 수 있으며, 실제 납부한 세금의 소득 대비 부담도 높지 않다. 현대경제연구원이 통계청 가계동향조사를 토대로 계산한 바에 따르면, 상용직 근로자의 소득세를 총소득으로 나눈 세금부담은 2012년 기준 3.7%였지만, 자영업자는 1%에도 못 미쳤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세제 개편으로 또다시 자영업자에 비해 더 무거운 세금부담을 짊어지게 되니까 봉급생활자들이 불만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 현재 중산층의 살림살이가 그만큼 버겁다는 뜻이다. 정부 설명에 따르면 연봉 4천만원에서 7천만원까지 근로자들은 연간 16만원, 한 달에 1만3천원 정도의 세금을 더 부담할 뿐임에도 불만이 많다. 그만큼 그들의 생활이 불안하고 힘들다는 뜻이다. 10년 전과 20여년 전에 비해 중산층 비율은 위축되고 있으며, 중산층 가운데 살림살이가 적자인 가구의 비율은 1990년 15.8%에서 23.3%로 증가하고 있다.
세 번째, 민감한 세제 개편의 내용을 설명함에 있어서 전략적이지 못했다. “연봉 3천450만원 이상 434만명, 전체 근로자의 28%만 세금부담이 증가합니다”라고 설명했던 것에 문제가 있었다. 소위 ‘닻 내림 효과’(anchoring effect)를 간과했다. 즉 ‘3천450만원’이라는 숫자를 제시하면 사람들은 그 숫자를 가이드라인으로 삼아서 그 언저리에서 생각을 하게 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연봉 3천450만원이면 보통 사람들인데, ‘정부가 서민들을 중심으로 세금을 거둬가는 거네…’라는 식의 비판을 하게 된다. 반면, “1억원 이상 고소득자의 세금부담이 연간 110만원 이상 최대 900여만원까지 증가하며, 3천만원 이하 소득자는 오히려 세금이 감소합니다”라고 설명했다면, 정부가 고소득자 중심으로 세금을 걷는다는 생각을 하면서 ‘중산층 짜내기’라는 비판은 크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된다.
네 번째, 복지 서비스를 늘리려면 세금도 조금씩 더 부담할 수밖에 없다는 정공법을 활용했어야 한다. “삶의 질과 국민행복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세금을 조금씩 더 내야 합니다”라고 호소했어야 한다. 그게 바로 원칙이고 소신이다. 세율은 올리지 않으면서 재원을 조달한다는 것은 묘수가 아니고 조삼모사에 불과하다. 세금부담을 늘리지 않고 복지 재원을 조달할 수 있다는 기대를 부풀리는 바람에, 중산층의 세금을 조금 올리고도 뭇매를 맞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 루이 14세 시절의 재상 콜베르(Jean-Baptiste Colbert)는 세금 걷는 것을 ‘거위의 털 뽑기’에 비유한 바 있다. 거위가 아파하지 않고 도망가지 않도록 털을 뽑아야 하듯이, 국민들로부터 세금을 거둬들이는 것도 그와 같아야 한다는 뜻이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434만명의 거위들이 도망치려고 하고 있다. 정부가 털 뽑기를 너무 아프게 한다며 아우성이다. 세금 부담이 오히려 줄어드는 나머지 1천114만명의 거위들도 동요하고 있다. 자영업자들은 살살 뽑으면서 왜 봉급생활자만 아프게 뽑느냐며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고소득 근로자들 역시 지금도 많이 뽑히고 있는데 더 뽑아간다며 불만이다.
이 같은 세제 개편 논란은 선진국으로 가는 길목에서 반드시 거쳐야 할 통과의례이기도 하다. 지난 MB정부 시절에 감세 정책을 추진했던 것이 지나친 단견이었다는 점, 그리고 내린 세금을 다시 끌어올리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게 됐다는 점 역시 비싼 수업료를 내고 얻은 교훈이다. ‘거위의 털 뽑기’가 갈수록 어려워짐을 국민 모두가 체험했으니, 앞으로는 복지 공약을 준비하거나 평가함에 있어서 더욱 신중해질 것이라고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