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릴 것 같아 보이지 않던 개성공단 정상화가 가동중단 133일 만에 남북합의에 의해 해결의 가닥을 잡았다. 그동안 가슴 졸였던 공단 입주업체 관계자를 비롯해 경색일변도 정세에 답답했던 국민들에게 모처럼 무더위 속 시원함을 안겨준 반가운 소식이다. 이번 합의는 바뀐 남북 정권이 처음으로 이뤄낸 값진 성과다. 남측은 6차 실무회담까지 고집했던 책임 문제를 접음으로써 최종 합의를 견인해냈다. 이에 따라 개성공단의 국제화를 합의 5개항에 넣는 데도 성공했다. 북도 이전과는 달리 전향적인 태도를 보임으로써 대화를 통한 합의가 가능한 대상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물론 이번 합의로 개성공단이 당장 재가동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아직 합의하지 못한 3통(통행 통신 통관) 문제와 그동안 밀린 비용 정산 등 구체적인 협의 절차가 남아 있다. 이를 협의하기 위해 ‘남북공동위원회’를 설치하기로 합의했으나, 이 틀이 제대로 작동할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이미 2004년에도 출입 등 문제를 협의하기 위한 공동위원회 설치에 합의했으나 유야무야된 적이 있다. 다음 주 시작되는 남쪽의 을지포커스가디언의 전개 상황에 따라 어떤 돌출변수가 등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존의 남북대화 전례에 비춰볼 때 남과 북이 일단 신뢰를 확인한 다음에는 일이 순조롭게 풀리게 마련이었다. 여기서 조금만 더 서로 양보한다면 하루라도 더 빨리 공단 가동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실무회담 합의가 중국의 적극적인 압력에 의한 것이었는지는 시간이 더 지나봐야 확인될 것이다. 중국 측이 지난 5월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 방중을 전후해서 중국이 꾸준히 대화를 종용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있다. 지난달 리위안차오 중국 국가부주석이 남북 사이의 메신저 역할을 했다는 설도 나온다. 그동안 실무회담이 난항을 겪으면서 중국의 대북 관점이 부정적으로 바뀌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중국이 남북 사이에서 모종의 역할을 했으리라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번 합의의 성과는 어디까지나 남과 북이 일궈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국제적 환경이 변인이기는 하나 핵심 변수는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산적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과제들을 제대로 풀어갈 수 있다.
개성공단 정상화 합의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첫 매듭은 풀렸다. 신뢰 프로세스는 선순환 구조를 통해 상호 신뢰가 눈덩이처럼 커져가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는 신뢰 프로세스에 가속도를 붙여가는 과정이 요구된다. 금강산 문제, 이산가족 문제, 6자회담 재개 등 당장 풀어가야 할 일들을 한 박자 빠르게 준비하고 상대방에 제의하는 적극적 자세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