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 우리나라 역사상 자유를 위한 가장 위대한 시위로 역사에 기록될 이곳에 여러분과 함께하게 되어 기쁩니다.… 그러나 백년이 지난 지금도 흑인들은 자유롭지 못합니다. 인종차별이라는 수갑과 차별대우라는 쇠사슬 때문에 슬프게도 발을 절름거립니다. 물질적으로 충만한 거대한 바다 한 가운데서 빈곤이라는 고립된 섬에 살고 있습니다.
친구들이여, 비록 우리가 오늘 어려움에 직면해 있고 내일도 어려움에 직면하게 될지라도, 나는 오늘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나는 여전히 꿈을 가지고 있다고. 그것은 아메리칸 드림에 깊이 뿌리박은 꿈입니다. 나는 언젠가는 이 나라가 일어나서 “우리는 모든 인간이 평등하게 창조되었음을 자명한 진리로 삼는다”는 이 나라 국민 신조의 참뜻을 체험하게 될 것이라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언젠가는 조지아 주의 붉은 언덕에서 옛 노예의 자손들이 옛 노예 소유주의 자손들과 함께 형제애의 테이블에 앉을 수 있게 되리라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나의 네 명의 자녀들이 언젠가는 그들의 피부색으로 판단되지 않고 그들의 인품에 의해 판단되는 나라에서 살게 되리라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그리고 미국이 위대한 나라가 되려면, 이 꿈이 실현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자유가 뉴햄프셔 주의 거대한 언덕 위로부터 울리게 합시다. 자유가 뉴욕 주의 광대한 산들로부터 울리게 합시다. 자유가 펜실베이니아 주의 앨리게니 산맥으로부터 울리게 합시다! 자유가 콜로라도 주의 눈 덮인 로키 산맥으로부터 울리게 합시다! 자유가 캘리포니아 주의 굽이진 능선으로부터 울리게 합시다! 그뿐만 아니라 자유가 조지아 주의 스톤 마운틴에서도 울리게 합시다. 자유가 미시시피 주의 모든 언덕과 둔덕으로부터도 울리게 합시다. 자유가 모든 산허리로부터 울리게 합시다.’
1963년 8월 28일, 그러니까 꼭 50년 전 마틴 루터 킹 목사가 25만명의 청중이 모인 워싱턴 링컨 기념관 앞에서 한 연설입니다. 이 한 편의 연설로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제퍼슨(1776년 필라델피아에서의 연설), 링컨 대통령(1863년 게티즈버그에서의 연설)과 함께 현대 미국을 만든 위대한 인물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해인 1964년 시민권 법령이 통과되었고, 1965년에는 투표권 법령이 채택되는 등 일련의 사회적 변화가 있었지만 흑인민권운동은 더욱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 했습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이 위대한 연설이 있은 지 2주 후 버밍햄의 백인 인종주의자들은 식스틴스 침례교회를 폭파해 네 명의 소녀를 죽였고, 1968년에는 마틴 루터 킹 목사도 암살당했습니다. 그의 나이 서른아홉 살이었습니다.
반세기가 지난 후, 지금은 흑인이 대통령이 된 나라가 되었지만 미국 사회에서 경제적 불평등은 지난 수십 년간 꾸준히 증가해 왔습니다. 특히 유색인종은 경제적 기회 면에서 불평등에 처해 있고, 인종 간 빈부격차는 더 늘었습니다. 워싱턴 대행진 50돌을 기념하는 연설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킹 목사의 꿈은 오히려 더 멀어졌다. 자유란 그 사람의 생계와 직결돼있고, 행복추구란 결국 직업의 존엄성, 적절한 봉급을 받을 수 있는 일자리 등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 이미 50년 전에 제기된 요구’인데, ‘흑인 실업률은 여전히 백인 실업률의 두 배이고, 그 뒤를 라틴계가 이을 정도로 인종 간의 빈부 격차는 줄지 않고 오히려 늘었다.… 행진은 계속되어야 한다’라고 지적했습니다. 평등은 경제 민주화가 실현될 때 현실이 됩니다. 경제민주화 없는 정치민주화는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입니다.
‘꿈은 이루어진다’. 지난 한일 월드컵 경기 때에 한반도를 뒤흔든 함성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꿈은 이루어졌습니다. 이루어진 꿈은 우리에게 자신감과 희망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꿈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킹 목사가 암살당한 것처럼 세상은 꿈꾸는 사람을 죽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코 꿈을 죽이지는 못합니다. 꿈꾸는 사람이 세상을 바꾸지는 못했어도 꿈꾸는 사람은 꿈을 꾸는 동안 자신이 변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꿈 자체가 마침내 세상을 바꿀 것이라는 것을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자신의 삶과 죽음을 통해 보여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