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레가 추석이다. 모처럼 가족들이 모여 차례도 지내고 화기애애한 시간을 이어간다는 기대에 마음 부푸는 사람이 많다. 만나선 지나간 안부도 묻고 세상사는 이야기도 나눈다. 자주 보지 못한 아쉬움을 한꺼번에 풀어내기도 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명절을 골칫덩어리로 여기기도 한다. 명절 때 멀리 이동해야 하는 사람들은 오고가야 하는 생각에 마음이 무겁고, 시집에 가서 명절노동을 해야 할 며느리들은 한달 전부터 증후군에 시달린다. 더욱이 경제사정이 넉넉지 않아 가족들을 만나기가 부담스러운 사람은 명절이 “안 왔으면” 하는 날이다. 특히 식구와 친척들로부터 듣게 될, 안부를 빙자한 잔소리가 싫은 사람은 명절이 다가올수록 탈출할 궁리부터 한다.
속내가 이렇다보니 모여서 나누는 대화도 부재다. 주제 찾기도 어렵지만 일상의 평범한 소재나 정치문제가 전부다. 그리고 남은 시간은 먹는 것에 집중한다. 눈뜨기 전부터 잠들 때까지 먹는 것에 집착하는 이유 중 하나도 서로 모여서 딱히 할 말이 없어서이기도 하다. 명절 때 잘 차려진 음식을 먹는 것은 본능처럼 당연한 것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실은 서먹함을 지우려는 가족애의 불편한 진실이다.
남녀, 특히 부부간 갈등도 심화된다. 여성들에게 부당하게 분담되는 가사노동과 함께 ‘먹는 것은 남성, 만들고 치우는 것은 여성’이라는 시집중심의 가족문화가 빚어낸 결과 때문이다. 이로 인해 생겨나는 감정노동의 피로감이 증가될 경우 부부싸움, 심하면 이혼으로 이어지는 등 갈등의 후폭풍도 매우 크다.
분위기 파악 못하는 남성들과 나이 든 친인척들이 생각 없이 던지는 질문 공세도 문제다. 명절 때 다 단골처럼 나오는 대화지만 당사자들은 여간 곤혹스럽지 않다. “공부는 잘하니.” “취직은 했냐.” “결혼은 언제 할래.” “애는 언제 낳을 건데.”
한편으로 서로 간 궁금한 소식들이지만 결코 해서는 안 될 질문목록들이다. 특히 고3인 수험생을 둔 부모에게 “어느 대학 가려고 하냐?”는 질문은 가혹한 고문과도 같다. 별로 관심도 없으면서 툭툭 내뱉는 이 같은 질문들에 많은 가족들이 가슴 아파하며 상처를 받는다. 올 추석엔 최소한 이러한 질문 말고 친척들끼리 상호간 삶의 방식을 존중하는 대화가 오갔으면 좋겠다.
/정준성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