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 상봉행사를 갑작스레 취소한 북한의 처사에 할 말을 찾기 어렵다. 북은 금강산으로 떠날 날만 손꼽아 기다리던 이산가족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또한 가까스로 화해와 대화의 실마리를 잡은 남북관계를 삽시간에 대결과 긴장 상태로 되돌려놓았다. 이러고도 인도주의 운운하고 있으니 어처구니없는 적반하장이다. 입만 열면 민족을 들먹이면서 남과 북 겨레의 소망을 이런 식으로 짓밟고 외면하는 저들의 강변에 분노를 참기 어렵다. 시대의 흐름을 어찌하면 그렇게도 읽지 못하는지 모르겠다.
북이 내놓은 상봉 무기 연기 이유는 사리에 맞는 게 없다. 21일 발표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대변인 성명은 두 가지 이유를 들었다. 우선 남측이 이산가족 상봉 등 남북관계 진전을 ‘원칙론의 결과’로 광고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상봉회담 타결 직후부터 남쪽 정부 입장과 여론은 대체로 일관적이었다. 상봉을 나흘 앞두고 이 점을 시빗거리로 내세우는 건 억지다.
둘째, ‘남조선보수패당’이 ‘이석기 사건’을 계기로 “모든 진보민주인사를 용공 종북으로 몰아 탄압하는 일대 마녀사냥극을 벌인다”는 점을 들었다. 설령 저들의 주장이 100% 옳다고 해도, 그것 또한 결코 상봉 취소 이유가 될 수는 없다. 두 일은 전혀 연계시킬 사안이 아니다. 오히려 남쪽의 성난 민심을 부채질하는 최악의 선택이다.
이번 일방 취소 선언으로 북이 이산가족 문제를 정치적 의제로 다룬다는 사실이 적나라하게 확인됐다. 조평통 대변인 성명은 “(남이) 모든 대화와 협상을 대결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는 한 초보적인 인도주의 문제도 올바로 해결될 수 없으며 대결의 악순환만 되풀이된다”고 강변했다. 하지만 이 성명은 남쪽 국민들에게 초보적인 인도주의 문제조차 대결의 수단으로 삼는 집단은 북이라는 사실만을 또렷하게 각인시켰을 뿐이다.
북한의 의도가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한 지렛대로 이산가족 상봉을 활용하려는 것이라 해도 이번 일방 취소로 얻을 건 없다. 오히려 남한 정부와 국민들이 더욱 더 확고한 대북 원칙론을 고수하도록 하는 효과만 낳을 것이다. 재가동에 들어간 개성공단의 앞날에도 결코 좋은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다. 개성공단 중단까지 가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남쪽 여론이 크게 부정적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
인도주의 문제는 어디까지나 인도주의 원칙으로 풀어야 한다. 자신들 말대로 초보적 인도주의 문제인 이산가족 상봉을 이런 식으로 악용하면 안 된다. 아직 시간이 있다. 북은 이제라도 약속했던 25일 상봉행사를 예정대로 이행해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