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가을이다. 파란 하늘에서는 시원한 가을바람이 불어온다. 한낮의 따사로운 햇살은 한없이 부드럽다.
자비로움이 온 누리에 퍼져 생명의 기운찬 파장이 흐른다. 초록에서 결실의 색깔인 갈색으로 온 생명들이 자신을 갈무리하는 시절이다. 태양은 공평하게, 가을바람은 공평무사하게, 우리의 텅 빈 가슴을 한없이 채운다. 결실의 생각들이 내 마음의 한 모퉁이에 의(義)롭게 다가선다.
누구나 내 것 귀한 줄은 안다. 나의 생각, 나의 친구, 나의 사람, 나의 재산, 나의 신앙의 귀한 줄을 알아야 이웃의 입장도 생각해본다. 내가 귀한 존재라면 이웃도 역시 귀한 존재다. 입장 바꿔 생각해보는 역지사지(易地思之)적 관점이 생성된다. 내 것 귀한 줄을 모르면 남의 것 귀한 줄을 몰라 함부로 상대하기 십상이다.
그렇다고 내 것만을 생각하는 것은 아주 어리석다. 천상천하 유아독존(唯我獨尊)식 사고방식은 지혜롭지 않다. 이 넓은 하늘 아래서 ‘너’와 ‘내’가 함께 공존하는 방식이야말로 이 세상을 보다 밝게, 보다 소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게 한다. 그만큼 세상은 살만한 가치가 있다. 이 결실의 가을에 물질은 그리 넉넉지는 않을지라도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며 배려하는 마음만은 풍족해야 되지 않을까?
필자가 근무하는 한광여자중학교에서 나는 우리 아이들의 넉넉한 마음을 보았다. 이 글을 쓰면서 ‘팔불출이라 어리석다’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다. 그럴지라도 우리 아이들에게 풍족한 마음과 넉넉한 인심을 발견했기에 너무나 감사한 마음으로 한없이 감격스럽다.
평택 한광학원엔 남녀중고등학교(4개교)가 있다. 같은 캠퍼스에 자리한 학교. 한광중학교 2학년 김사랑 학생이 골수암으로 투병생활을 하고 있다. 어린 나이에 암 투병하는 그 학생의 모습이 한없이 가련하고 안타까웠다. 가정도 그리 넉넉하지 못한 터라 도움의 손길이 절대로 필요했다.
이 상황에 교사들은 ‘이웃사랑, 배려실천’이란 진실한 마음으로 사정을 전달했다. 그랬더니 그 말을 수용하는 우리 아이들의 자세가 너무나 절대긍정이었다. 이웃사랑을 몸소 실천하는 손길이 물질로는 그리 넉넉하지는 않지만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는 배려하는 마음만은 풍족했다. 그리하여 자발적으로 모금된 액수가 캠퍼스 내 3개 학교가 모금한 액수보다 많았다는 후문이다. 중1에서 중3까지, 14살에서 16살, 이 어린 한광여중의 소녀들이 결실을 맺은 아름다운 마음은 하늘의 상금을 받기에도 충분하다고 생각되니 저 하늘로부터 잔잔한 감동이 밀려왔다.
아, 가을이다. 삼라만상이 결실하는 이 계절에, 우리도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선(善)한 결실을 맺도록, 그리고 넉넉하지는 않을지라도 마음만은 풍요로운 가을 언덕을 넘어가자. 함께라면 무거운 짐도 가볍지 아니한가! 감동의 힘으로 오늘도 소망을 안고 살자고 다짐해본다.
▲고려대 교육대학원 국어교육학과 ▲경기예총 2012년 빛낸 예술인상 수상 ▲한광여중 국어교사 ▲전 (사)한국문인협회 평택지부 지부장 ▲시집-『카프카의 슬픔』(시문학사·1992년)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