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 문화에서 꽃은 여자가 아니라 남자를 상징할 때가 많다. 그중 국화는 의(義)를 지키고 뜻을 굽히지 않는 선비와 문인의 심벌이다. 또 고고한 기품과 절개를 지키는 군자에 비유되기도 한다. 국화는 이슬이나 밤서리를 견디며 피어난 꽃으로서 예찬된다. 그래서 예부터 국화를 오상고절(傲霜高節)이라 칭하며 매화, 난초, 대나무와 함께 사군자의 하나로서 귀중하게 대접했다. 조선 후기 문신 이정보는 해동가요에서 ‘국화야 너는 어이 삼월동풍 다 보내고/낙목한천에 네 홀로 피었는고 /아마도 오상고절은 너뿐인가 하노라’고 노래했다.
국화는 피는 시기에 따라 추국(秋菊), 동국(冬菊), 하국(夏菊) 등으로 나눈다. 이 중 동국은 가장 늦게까지 핀다. 동국은 다른 국화가 한창일 때 봉오리를 굳게 다물고 기다렸다가 첫서리가 내려야 비로소 꽃을 피운다. ‘국화옆에서’의 작가 미당 서정주 시인의 전북 고창 질마재 묘소 주변 5만여평을 노랗게 물들이는 그 품종이다.
국화는 꽃을 말려서 술에 넣어 마시고 어린잎은 나물로도 쓴다. 또 떡에도 붙여 구워 먹는다. 꽃에 진한 향기가 있어 관상용으로도 많이 쓰며 또 한방에서는 약재로도 쓴다.
동양의 시인 치고 국화를 노래하지 않은 이가 드물다. 그중에서도 조선시대 문인 권필(權畢)만큼 국화를 사랑하는 이도 없지 않을까 싶다. 광해군을 풍자한 시를 읊었다는 죄로 귀양을 가던 중 백성들이 주는 동정술을 너무 마셔 죽었다는 그는 ‘실인권지주’(室人勸止酒:집사람이 술 끊기를 권하기에)라는 시에서 이렇게 썼다. 數日留蓮飮(수일유연음) 今朝與更多(금조여경다) 卿言也復是(경언야복시) 奈此菊枝何(내차국지하). ‘며칠 연이어 술을 마셨으나/ 오늘 아침에 흥이 다시 넘치네/ 그대 말이야 옳고 또 옳지만/ 저 국화꽃을 어찌하면 좋겠소.’ 며칠 음주로 술 생각이 없을 법도 한데 뜰에 핀 국화꽃을 보니 그 자태에 반해 다시 취하고 싶다는 말이다. 낭만이 넘친다.
요즘 전국이 국향(菊香)으로 가득하다. 이런 국향이 꽃의 나라 네덜란드에도 퍼질 것이라고 한다. 지난 2일 경기도농업기술원이 개발한 ‘마이레이디’ 등 경기도산 국화가 현지에서 시범 재배되고 그 중 일부를 판매키로 계약이 체결됐기 때문이다. 국화의 계절,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정준성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