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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춘 것 같이 딱 맞을 때’ 또는 ‘생각한대로 튼튼하게 잘된 물건’을 안성맞춤이라고 한다. 문제는 왜 안성이라는 지명이 붙었는가이다. 두 말할 것도 없이 안성이 유기로 유명한데서 비롯된 것이다.
그렇다면 안성 유기는 언제부터 만들어졌을까. 1803년에 펴낸 서유구(徐有溝)의 ‘임원십육지(林園十六誌)’에 보면 ‘호남의 구례지방과 평안도의 정주지방에서 유기를 생산하였지만 안성유기가 으뜸이니, 안성읍내장과 장호원의 장터에 안성에서 만들어진 유기가 많이 나온다’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18세기 초부터 만들어 졌음이 분명하다.
안성유기는 크게 두가지다. 하나는 방짜 유기이고, 다른 하나는 주물로 만든 것이다. 주물은 놋쇠를 녹여 주물한 것이고, 방짜는 좋은 놋쇠를 부어내서 다시 두드려 만든 그릇을 말한다.
안성은 유기만 유명한 것이 아니였다. 안성장도 유기 못지 않게 명성이 높았다. 안성장이 유명해진 것은 조선 후기로, 호남과 영남으로 이어지는 교통로가 합치하는 지리적 조건 탓이 컸다.‘영조실록(英祖實錄)’에 보면 ‘안성장의 규모가 한양의 이현시장이나 칠패시장보다 커서 물화가 모이고 도적떼도 모여든다’는 기록이 있고, 1900년초에 펴낸 ‘안성기략(安城記略)’에도 ‘안성시장에는 고래로 팔도 물산이 집산해서 상업이 발달하였고, 소위 양반계급에 속한 자도 점포에서 활동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라는 요지의 기록이 있다. 그런데 이같은 안성장과 안성유기의 명성이 시들해진 까닭은 무엇일까.
한마디로 철도 부재 탓이다. 경부선이 안성을 비켜 평택으로 이어진데다 1925년 11월 1일에 개통돼 천안과 안성을 오가던 안성선(28.4km)마져 1982년 4월 30일 폐쇄돼 철도가 없는 도시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철마(鐵馬)가 없는 안성은 쓸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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