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으로 볼 때 후추로 인해 끊임없는 전쟁이 일어났다. 비록 작은 알갱이지만 후추를 얻는 자가, 후추를 얻는 나라가 세상을 지배할 수 있을 정도로 가치가 컸기 때문이다.
로마시대만 하더라도 후추는 귀족과 부자들에게 없어선 안 될 향신료이자 부의 척도였다. 아랍을 통해 가져온 후추의 가격 또한 금값과 맞먹었다. 당연히 주변국과 후추로 인한 전쟁은 자주 일어났고 패한 국가는 막대한 양의 후추를 배상금으로 물기도 했다.
16세기에 들어서도 영국, 스페인, 포르투갈, 네덜란드가 후추무역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수많은 전쟁을 치렀다. 후추의 주생산지는 인도로부터 유럽으로 통하는 운송로인 지중해 바닷길을 확보하기 위해 수시로 전쟁을 벌인 것이다. 특히 육상 운송로를 장악하고 있던 아랍권과의 전쟁은 기독교 문명과 이슬람 문명의 충돌로 이어져 십자군전쟁을 일으키는 한 원인이 되기도 했다. 이러한 전쟁에서 불리해진 스페인의 이사벨라 여왕이 후추산지를 확보하기 위해 인도로 보낸 콜럼버스에 의해 아메리카 대륙이 발견됐다는 일화는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전쟁이 나면 유럽의 기사, 상인, 농민들은 자진해서 전쟁에 뛰어들었다. 지급되는 돈 때문이었다. 12세기 이탈리아 항구도시 제노아에선 승리하고 돌아온 군인에게 보너스로 후추 1kg 을 지급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당시 후추값은 금값과 비슷했다고 하니까 요즘 시세로는 7천만원쯤 된다. 당시 물가수준으로 보면 어마어마한 금액으로 후추의 가치를 짐작케 한다.
후추가 전쟁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은 강렬한 맛도 한몫했다. 성욕보다 강하다는 식욕이라는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켜 주어서다. 특히 소금을 대신할 수 있는 맛과 100가지 이상의 향을 낼 수 있고, 육류의 부패를 억제하는 항균작용도 매력으로 작용했다. 기원전 13세기 이집트 람세스2세 미라에서도 후추가 발견됐다. 후추가 파라오의 육체를 불멸 상태로 보존하기 위한 방부제로 쓰였다는 증거다.
최근 후추가 유전자에 영향을 끼쳐 비만 개선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후추에 든 피페린이라는 영양소 덕분이라는 것이다. 인류 전쟁의 주역이었던 후추가 현대인의 ‘살과의 전쟁’에서도 요긴하게 쓰일 모양이다.
/정준성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