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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못다한 노래 이제 불러볼까”

‘사인사색’ 공연 앞둔 이장희

 

가수 그만두고 음식점·방송국 경영
11년 세시봉 동료들과 다시 돌아와
지난 3월부터 첫 투어 콘서트 진행
노래 부르면 젊은 날 돌아가는 기분

2년 전 “1975년 중단하며 못다한 노래를 이제 불러볼까 한다”던 이장희는 그 약속을 지키고 있었다.

최근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한 연습실. 자택이 있는 울릉도에서 며칠 전 상경한 이장희는 요즘 이곳에서 하루 두 시간씩 노래를 부른다고 했다.

그는 20∼21일 종로구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송창식, 최백호, 한영애와 함께 ‘낭만콘서트 사인사색(四人思色)’ 공연을 앞두고 있다.

“노인네가 좋아하는 노래를 실컷 부르니 생애 최고의 해죠. 노래를 부르면 젊은 날로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지난 40년 동안 왜 손을 뗐나 싶어요. 하하하.”

유유자적 노래하는 듯 보이지만 그는 올해 못다 한 노래를 부지런히 불렀다. 지난 3월부터 서울, 부산, 대구 등지를 돌며 생애 첫 투어 콘서트를 했다.

변변한 공연을 해본 기억이 거의 없다. 무명 시절 라이브 음악 감상실 오비스 캐빈에서 1년 반 동안 하우스 밴드와 노래했고 1972년 드라마센터에서 데뷔 콘서트를 했다. 1974년 ‘별들의 고향’ OST(오리지널사운드트랙) 앨범을 내고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공연한 게 마지막이었다.

이장희의 초기 가수 활동은 그만큼 짧았다. 1971년 인기 DJ 이종환의 권유로 1집 ‘겨울이야기’를 내고 스타가 된 지 4년 만인 1975년 대마초 파동에 연루되며 마이크를 내려놓았다.

이후 의류 매장을 운영하며 돈을 벌었지만 1970년대 후반에는 작곡과 음반 제작에 손을 댔다. 김현식의 데뷔 음반을 비롯해 김수철, 김태화, 들국화의 최성원, 쉼(한상원, 정원영 등) 등의 음반을 제작하며 ‘이장희 사단’을 이뤘다.

1980년대 초 미국으로 건너가 레스토랑을 운영한 그는 1988년 라디오코리아를 설립해 1989년 1월 첫 방송을 했다. 라디오코리아는 1992년 흑인들의 로스앤젤레스(LA) 폭동 당시 교민들을 구조하는 상황실 역할을 하며 성장했다. 그러나 2003년 전파를 임대한 중국계 방송이 전파료 인상을 요구하자 방송국 문을 닫고 귀국해 2006년 울릉도에 터를 잡았다.

그는 “인생은 순간의 선택의 연속”이라며 “노래를 그만둘 때는 그게 대세였고 대학(연세대)도 졸업 안 했으니 장사밖에 할 게 없었다. 미국에서는 살려고 음식점을 하고 방송국을 경영했다. 은퇴를 결심하고 하와이에 살려고 땅과 집을 알아봤는데 우연히 울릉도를 경험하고 너무 아름다워 농가 딸린 농토에 터를 잡았다. 모든 게 내 선택으로 자연스럽게 굴러 간 셈”이라고 설명했다.

미련없이 직책을 버리고 낙향한 도연명(陶淵明)처럼 그는 자신의 터전에 ‘울릉 천국’이라고 이름 짓고 은퇴 후의 삶을 영위했다.

2011년 조영남, 송창식, 윤형주 등의 세시봉 동료들과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오며 젊은 날의 자신을 찾았다. 같은 해 약 30년 만에 만든 신곡인 ‘울릉도는 나의 천국’도 발표했다.

이번 공연에서 그는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한잔의 추억’, ‘그건 너’, ‘내 나이 육십하고 하나일 때’ 등의 대표곡을 부른다. 그리고 지난 9월 별세한 소설가 최인호를 기리기 위해 ‘안녕’을 선곡할 생각이라고 했다. 최인호는 그의 고교·대학교 선배로 막역한 사이였다.

지난 2년여 간 들뜬 생활을 했다는 그는 “공연이 끝나면 몇개월 간 데스 밸리로 떠나 별을 보며 살 계획”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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