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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춘추] 잔혹한 처형과 그들의 침묵

 

1989년 성탄절, 60여발의 기관총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빗발치는 총탄들이 포승줄에 묶인 두 남녀의 몸에 정확하게 내리 꽂혔다. 두 남녀는 루마니아를 35년이나 철권 통치해 왔던 독재자 차우셰스쿠와 그의 부인이었다. 단 하루 만에 판결과 사형이 집행된 속전속결식 처형은 차우셰스쿠의 비밀경찰조직인 ‘세쿠리타테’ 기관원 3천여 명이 반란을 도모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 제1위원장은 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을 체포한 뒤 나흘 만인 지난 12일 국가안전보위부 특별군사재판소 판결을 통해 재판 당일 처형을 단행했다. 북한헌법에도 보장된 3심제를 무시하고 단심(單審)으로 처리해 버렸다. 장성택의 처형은 기관총을 난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거기에다 화염방사기로 태워버렸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장성택은 비교적 온건성향의 인물이었다. 장성택의 측근이던 리용하 당 제1부부장과 장수길 부부장도 지난 달 하순 기관총에 의해 무참히 처형되었다.

이보다 앞서 북한 은하수관현악단 및 왕재산음악단원 9명도 지난 8월 17일 재판 없이 기관총 난사로 처형되었다. 벌집이 된 시체를 화염방사기로 끔찍하게 태워버렸다는 자유아시아방송(RFA)의 보도도 있었다. 은하수관현악단은 김정은의 아내 리설주가 결혼하기 전 몸담았던 예술단으로, 포르노 제작 등 성추문을 주도한 단원들이 ‘리설주도 우리처럼 놀았다’고 폭로했다는 것이다.

루마니아의 독재자 차우셰스쿠가 처형된 것과 동일한 방법으로, 한 술 더 떠 화염방사기까지 동원한 처형방식은 인간의 공포를 극대화시킨다. 북한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치고는 너무 끔찍하고 잔혹한 방법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김정은이 망각한 것은 차우셰스쿠는 독재자였으며 자신도 독재자라는 사실이다. 독재자의 부메랑은 독재자 자신에게도 똑같이 날아든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김정은의 인권유린적 공포정치에 침묵하는 자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친북?종북적 행동으로 국민의 지탄을 받고 있는 통진당 이정희 대표는 “독재정권을 더 이상 용인 않겠다”고 말해왔다. 그런데도 북한 정권의 잔혹한 처형에는 입을 다물고 있다. 우리 대통령은 독재자로 규정하면서도 김정은에 대해서는 독재자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또한 분규와 시위가 발생하는 곳마다 개입하며 ‘민주, 인권존중, 생명중시’를 외쳐대던 그 많은 단체들도 일제히 침묵하고 있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은 “불의에 맞서 싸울 의무가 있으며 이로 인해 어떤 고난이 있어도 그 길을 외면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왔다. 그처럼 불의 척결을 외치던 정의구현사제단의 패기와 열정도 북한의 공포정치에는 슬그머니 고개 숙인다. 사소한, 극히 사소한 일에도 대통령 퇴진을 외쳐대던 그들이었다. 정의구현사제단은 김정은 퇴진은 뒤로 제쳐두고라도 공포정치를 중단하고 주민들의 인권을 존중하라는 최소한의 성명조차 발표할 용기가 없단 말인가.

북한의 인권유린에 침묵하는 그들은 천안함 폭침 사건을 북한의 행위가 아닌 우리 정부의 음모라고 주장해 왔다. 그 이유 중 하나가 당시의 어뢰 잔해에서 ‘1번’이라는 글자가 발견되었는데 북한에서는 1번, 2번 따위의 ‘번’자를 쓰지 않고 1호, 2호라는 ‘호’자를 쓴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번 장성택 처형 판결문에서 장성택을 ‘1번 동지’라고 불렀다는 구절이 나왔다. 북한에서는 ‘1번’이란 글자를 쓰지 않는다고 주장했던 그들은 음모론을 즉시 철회해야 한다. 하지만 그들은 침묵을 지키고 있다.

김씨 세습왕조의 최측근으로 40년간 군림했던 장성택은 막강 권력자로 등극한 조카 김정은에 의해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좌(左) 성향 단체들과 유력인사들은 우리 정부에 대해서는 사사건건 비난과 비판을 일삼아 왔다. 하지만 북한의 잔혹한 야만(野蠻)에 대해서는 한 마디 비난도 없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실로 비겁한 침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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