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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 미역국

 

유리창 밖으로 종종 걸음을 치는 사람들을 볼라치면 전기스토브 옆에서도 오싹하게 추위가 엄습한다.

이렇게 추운 날은 하늘이 가을보다 청명하다. 티 없는 하늘이 찬 공기를 가려주지를 못하고 그대로 땅으로 내려 보낸다. 약간 흐릿하게 덮인 구름이 햇빛을 가려 더 추운 것 같지만 보온덮개 구실을 하면서 찬 공기를 막아준다. 한 장 남은 달력이 추위까지 불러 자꾸 움츠러든다. 이럴 때 무엇으로라도 환기가 필요하다.

며칠을 두고 벼르던 미역국을 끓이려고 미역을 불린다. 돌아가신 시아버님 생신이면 특별히 상을 차리지는 않지만 그냥 지나가는 게 어쩐지 허전하고 죄송스러워 미역국이라도 끓여 먹고 지나는데 올 해는 성탄절과 겹치게 되었다. 아침 일찍 어머니께서 성당을 가시면서 혼자 아침을 드셨다. 결국 우리는 간단히 계란 프라이 하나에 커피로 아침을 때우고 저녁에나 밥을 먹기로 했으나 미사 시간을 앞당기는 바람에 또 우리 부부만 있는 밥에 대충 먹고 말았다.

살아 계실 때는 심한 알코올 중독으로 나를 힘들게 한 적이 한두 번도 아니고 돌아가실 무렵에는 중환자실에 계시면서 살림이 기울 정도로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도 하셨던 아버님이셨다. 그러나 당신 손자를 끔찍이 위해 주시고 병원에 실려 가시는 순간까지 품에 안고 주무시던 생각을 하면 서운한 생각은 어느새 걱정과 안타까움으로 바뀐다. 결국 미움은 사랑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면서 세상을 뜨시고 나니 어려운 시간 속에서 나를 단련하기 위해 그 자리에서 하신 역할이 아니었을까 하는 마음도 든다.

검고 단단하던 미역이 서서히 응어리를 푼다. 초록빛으로 떠나온 바다내음을 풍기며 주무를 때마다 미끈거리는 점액과 거품을 뱉어낸다. 불에 올려 볶기 시작하면서 특유의 냄새를 풍기기 시작하며 국이 끓자 어머니께서 들어오신다. 젊어서 여러 남매를 낳으시고 산후 조리도 제대로 못하신 탓에 늘 여기저기 아프신 어머니시다. 한 여름에도 내복을 벗지 못하고 사실 정도로 날씨가 조금만 쌀쌀해도 따뜻한 음식을 찾으셔서 항상 국이나 찌개를 끓인다. 게다가 매운 음식을 전혀 못 드시니 그 중에도 만만한 게 미역국이나 아욱국 또는 순두부찌개를 주로 하는 편이다.

그러던 차에 올해는 아버님 생신이 예수님 생신과 겹치는 바람에 뒤로 밀리고 말았다. 그렇게 이름이나마 짓고 지나가던 차에 이렇게 되고 보니 핑계를 대는 것 같기도 하고 새삼스럽기도 해서 어머니께는 그냥 아무 말도 안 하고 미역국이 여자들한테는 참 좋다고 많이 드시라고 하며 한 그릇 떠 드렸다. 식사를 마치시고 따뜻한 국을 먹으니 몸이 가벼워지는 것 같다고 하시며 커피 잔을 들고 텔레비전 앞으로 앉으신다. 슬금슬금 눈치를 살피던 내가 필요 이상 명랑한 목소리로 말을 한다. “어머니, 좋으시면 저녁에 또 미역국 끓일까요?”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 작가 신인상 수상 ▲가평 문학상 수상 ▲가평문인협회 이사 ▲플로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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