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해가 열렸다. 해가 바뀌면 새롭게 목표를 설정하고 잘 살아볼 거라고 다짐을 한다. 비록 작심삼일에 그칠지라도 떠오르는 첫 태양을 보면서 마음을 다잡는다. 누군가는 다이어트를 하겠다고, 혹은 금연을 하겠다고, 술을 끊어 보겠다며 당찬 계획을 세우고 노력하는 모습이 대단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지만 어떤 목표를 설정하고 노력하는 모습은 아름답다.
말띠인 여동생이 있다. 유난히 눈물도 많고 정도 많다. 팔 남매 중 다섯 번째인 그는 다른 형제들과 조금 달랐다. 성격도 활달하고 거침이 없으며 우리 형제들이 두루뭉술하게 생긴 데 반해 개성적으로 생겼다. 하여 어릴 때는 놀림도 많이 받았다. 다리 밑에서 주어왔다는 이웃집 삼촌의 놀림을 받던 동생은 어머니께 야단을 맞은 날은 생모를 찾겠다며 다리 밑을 서성이곤 했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날이었다. 그날도 동생과 싸운다고 꾸중을 들은 동생은 다리 밑에 쭈그리고 앉아 눈이 퉁퉁 붓도록 울고 있었다. 다리에 물은 차오르는데 엄마를 찾겠다고 울고 있던 아이가 마흔아홉 어엿한 중년이 되었다.
말처럼 달리며 지칠 줄 모르는 그녀, 철없던 20대 초반 반건달 같은 사내와 눈이 맞아 덜컥 살림을 차렸고 아버지의 반대가 극심했다. 심지어 딸의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않았고 신행을 와서도 쫓겨 갔다. 그렇게 눈물바람 속에 시작된 결혼생활은 평탄치만은 않았다.
시부모 모시고 살면서 이혼한 형님네 조카 둘을 제 자식처럼 키웠고 몇 년 억척스럽게 모아 음식점을 차렸는데 남편이 교통사고를 당해 제대로 영업을 해보지도 못하고 큰 손실만 입은 채 남편 간병하면서도 희망을 놓지 않았다.
사고로 장애가 생긴 남편을 삶의 현장으로 복귀시키고 두 아이를 건실하게 잘 키워냈다. 음식솜씨가 좋은 그녀는 다시 음식점을 차렸고 친절하고 성실한 덕분인지 장사가 잘 되었다. 음식을 해내는 것이며 손님을 응대하는 모습을 보면 경마장에서 출발신호를 기다리는 경주마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어려움을 겪어낸 때문인지 손님을 대하는 태도가 달랐다. 젊은이들이 오면 그들이 배불리 먹을 수 있도록 충분한 양의 음식을 보충해 주었고, 내 가족이 먹을 음식처럼 좋은 재료와 정성으로 음식을 만들었다.
달리는 말에 채찍을 가하라고 했던가, 내 집을 찾아준 손님이 되돌아가서는 안 된다며 쉬는 날 없이 일했다. 성실과 근면 그리고 노력 앞에서는 불경기도 감히 덤비지 못했다. 십여년 장사에 남부럽지 않은 집 장만에 노후에 힘이 될 수 있는 작은 부동산 문서도 두어개 생겼다.
동생을 보면 철의 여인 같다. 순간순간 닥치는 불행에 굴복하지도 실망하지도 않았다.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신이 선택한 삶이었기에 완벽하게 책임지고 싶다고 했다. 죽을힘을 다해 살다보면 오히려 살길이 보인다고 했다.
그렇다. 작년은 자영업자들에게 가혹하리만큼 힘든 해였다. 올해도 만만찮은 해가 될 것 같다. 힘들다는 푸념보다는 극복할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 해법일 듯싶다. 고삐를 단단히 움켜쥐고 초원을 찾아 달리다보면 광야를 만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힘차게 달리는 한해를 살아보자. 아니, 살아내 봐야겠다.
▲한국문인협회원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안견문학상 대상 ▲시집- 푸른 상처들의 시간